엄마의 서운함이 대견함으로 바뀌는 순간
쉬는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하교해 학원 가방을 챙길 수 있을 만큼 훌쩍 컸다는 걸 알지만, 혼자 터벅터벅 걸어올 아이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따뜻한 봄 햇살에 마음까지 몽글몽글해지던 오후, 아이가 엄마를 보고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하며 학교 후문으로 향했습니다.
지난번엔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기다리고 서 있었더니 아이가 싫어했던 기억이 나, 이번에는 가장 앞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바로 찾을 수 있도록 말이죠.
드디어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멀리서 익숙한 가방을 멘 우리 아이가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크게 손을 흔들었는데, 어라, 아이는 자꾸만 다른 쪽으로 걸어갑니다.
나오는 아이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엄마 여기 있었는데 못 봤어?”
아이는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 건조하게 답했습니다. “봤어요.”
섭섭한 마음이 훅 끼어들었습니다.
“봤는데 왜 아는 척 안 했어? 안 반가워?”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아이는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더니 묻더군요. “00는 어딨지?”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지금 엄마가 아니라, 찾고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짐짓 쿨한 척 물었습니다.
“이제 엄마가 안 데리러 오는 게 나을까?”
“음, 데리러 와도 되고 안 데리러 와도 돼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밖에서 만나면 멀리서부터 달려와 안기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와도 되고 안 와도 된다’니요.
당황한 마음에 쓸데없는 질문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혼자 하는 거 정말 괜찮아?”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속마음을 꺼내놓았습니다.
저는 아이가 늘 혼자 하교하는 게 안쓰러웠는데, 사실 아이는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함께 길을 걸을 ‘오늘의 파트너’를 스스로 탐색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의 어린 시절은 늘 정해진 단짝과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단짝이 없으면 외로울 거라 단정 지었습니다.
가끔 아이가 “오늘은 친한 친구가 다른 애랑 간대요”라고 말할 때면 가슴이 아릿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친구 관계를 한정 짓지 않았고, 거절당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저 그날그날 마음 맞는 친구를 골라 집에 올 뿐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방문한 놀이터에서 아이의 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와 놀다가도, 우연히 만난 유치원 동생과 금세 어울리더군요.
“왜 반 친구랑 안 놀고 동생이랑 놀아?”라는 질문에 아이는 명쾌하게 답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이의 친구 관계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쾌하며, 현재에 충실하다는 것을요.
1학년의 세계에서는 타인의 기분이나 엄마의 기준보다 ‘나의 지금 기분’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나는 지금 친구랑 비밀 얘기를 하며 가고 싶어”라는 마음 하나면 충분한 것이었죠.
교육을 전공하고 상담을 업으로 삼으며 수많은 아이를 만났지만, 제가 여덟 살이 아니기에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다 안다고 자만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은, 아이가 괜찮으면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아이의 독립 선언에 살짝 서운해하면서도, 스스로의 세계를 넓혀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한 자락을 내려놓습니다.
"느릿하지만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엄마로서 기록하고 싶었던 마음들을 이곳에 하나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아이의 1학년 생활과 저의 마음을 담은 연재,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