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문장을 읽다

by 은지

"우리는 각자 고유한 '나'임에 틀림없지만, 세포분열을 하듯 수많은 상황 속에 각기 다른 '역할'로도 존재한다.
...
누구의 앞이냐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 힘들다
...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p.162"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아주 멋지고 성숙하고 뭐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무겁고 진중한 그런 어른.

그렇지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걸. 어느 날은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멋지게 말을 해낼 때도 있지만, 편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영락없는 철딱서니 그 자체였다.


일기를 쓰고, 글을 쓰고, 나를 되돌아보면서


‘아, 그런 어른은 원래부터 진중한 성향을 타고난 사람만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지금 가면을 쓰는 건가. 나는 지금 가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오히려 진짜의 나를 지우고, 진짜가 아닌 삶을 살아내기 위해 괜히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질 즈음, 운이 좋게도 <보통의 언어들>을 읽게 되었다. 방송에서 늘 멋진 말을 하는 사람도 때로는 자기 안의 다른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마음에 쿵 남았다.

아. 이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 거구나. 내가 함께하는 사람에 맞추고, 내가 있는 상황, 그 장소에 맞추어서 다르게 행동하는 나도 진짜구나.
나는 한 가지 모습만 가진 ‘나’가 아니라 여러 역할을 해내는 수많은 ‘나’를 함께 하고 있는 거구나.

이 페이지를 읽고 갑자기 안심이 되었다. 진중하고 싶은 나도, 친구들 앞에서 한없이 가벼운 나도, 조용한 나도, 시끄러운 나도 전부 나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글로 인지하는 순간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라는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안도감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멋진 어른을 꿈꾼다. 다만 이제는 하나의 얼굴로만 살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 그 어떤 모습의 나도 그 모든 순간에서 누군가와 잘 지내고 싶어 애써온 나였다는 걸 아니까.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고
나는 여전히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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