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족 오하나가 ‘저주의 일요일’을 겪기까지

《오렌지족의 최후》(미메시스, 2025)에 대한 단상

by 문종필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오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송아람의 신작 《오렌지족의 최후》가 올해 마지막 달 출판사 미메시스에서 출간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첫 책 《자꾸만 생각나》(미메시스, 2015)에서 애인이 있는 두 남녀가 새로운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무리 없이 설득력 있게 연출했다. 《두 여자 이야기》(이숲, 2017)에서는 편견과 혐오에 굴하지 않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이야기는 동시대의 페미니즘 담론과 맞물려 많은 사람에게 호응받았다.


2년 뒤 출간된 《송아람 생활만화》(북레시피, 2019)에서는 전작들처럼 자전적 경험과 이야기가 한 데 어우러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아이를 성실히 돌봐야 하는 부모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투명하게 담았다. 그래서 이 텍스트를 읽고 젊은 만화가도 나이를 비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려되는 것은 시인처럼 자신의 경험(체험)을 뽑아 올리는 만화가들의 경우, 몸에 새겨진 경험이 소진되면 새로운 경험을 쌓을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 경험을 어떻게 쌓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이런 기대와 궁금증의 과정에서 만난 텍스트가 오늘 독자들에게 소개할 《오랜지족의 최후》(미메시스, 2025)이다.


오렌지족의 최후 표지.jpg 《오렌지족의 최후》 표지

물론, 이 책은 2025년 12월 15일에 발행일이 적혀 있지만, 이미 〈네이버 시리즈 만화〉로 지난달 26일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엄연히 따지면 ‘신작’이 아니다. 게다가 만화가 송아람의 터전은 웹툰이 아니다. 애정을 갖고 세로 스크롤이나 가로 스크롤 형식을 능동적으로 연출하기보다는 노골적으로 출판만화 형식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니 독자들의 경우, 종이책으로 보는 것이 조금은 더 역동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텍스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새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렌지족’의 최후?


우선 살펴봐야 할 것은 제목에 담긴 함의이다. ‘오렌지족’은 X세대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X세대가 기성세대와 차별화된 문화적 특성을 품었다면, 오렌지족은 1990년대 초중반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표현했다. 이들은 고가 브랜드를 소비하고 외제 차를 타고 다닐 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이 드는 유학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부모를 잘 만난 탓에 별 어려움 없이 하고 싶은 것과 입고 싶을 것, 들을 수 있는 것까지도 걱정 없이 소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결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화가 송아람이 적고 있듯이, “우리 같은 애송이들은 〈부모님 허락〉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소로운 존재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땀 흘려가며 번 돈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표현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느 정도 허세 있는 친구들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들은 1990년대 당시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만화가가 이들의 ‘결핍’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소외된 존재나 짓눌린 존재에 대해선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이 순간에도 꾸준히 재현하고 있지만, ‘오렌지족’이나 오렌지족에 가까웠던 세대의 내밀한 이야기는 만화의 소재로 잘 다뤄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 텍스트는 일정부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 세대가 품고 있는 결핍을 어떻게 바라볼지가 이 텍스트를 읽는 관점 포인트이다.


만화가가 오렌지족인 열일곱살 오하나를 통해 그 세대와 현실을 적극적인 방식으로 옹호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이유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세대의 모순과 결핍을 냉정히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가령, 텍스트의 첫 줄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집안 형편이 좋아 유학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자신의 처지에 대해 “몇몇 유명한 동문을 간판처럼 내세울 뿐…(중략)…돈만 처바르면 누구든 입학”할 수 있었던 곳이 자신이 유학 생활을 했던 ‘베이뷰 칼리지(Bayview College)’였다고 말이다.


이야기와 형식


《오렌지족의 최후》는 열일곱 살 유학생 오하나가 겪은 ‘그날’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그날은 오하나에게 ‘저주의 일요일’이지만, 만화가는 그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추리하면서 읽게 된다. 송아람은 ‘그날’이 어떤 날인지 선명하게 그려질 때까지 비밀을 풀어보라고 독자들에게 권하는 듯하다.


앞서 회상이라는 단어를 쓴 것처럼, 이 텍스트는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어 표현된다. 그래서 다소 혼란할 수 있다. 하지만 독백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 인물의 내밀한 이야기를 사적(私的)으로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혼란스러움은 희석된다.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또 다른 요소는 ‘음악’이다. 오하나가 한국과 외국에서 유학 생활하며 들었던 1990년대 가요가 텍스트에서 재현된다. 이 과정에서 그 시대에 유행가요를 들으며 성장했던 세대에게 시대와 추억을 킥의 형태로 선물한다.


《오렌지족의 최후》에서 오하나는 엉뚱하고 순수한 면이 있다. 그녀에게 유학의 목적은 학문 탐구가 아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났던 유학생인 한 ‘남자(최준혁)’를 만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그와의 불장난 같던 사랑에 울고 죽는다. 〈오릴리아 공립 중등학교〉와 〈베이뷰 칼리지〉에 입학해서는 홀로 놓여 있다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형편없는 남자에게 마음을 주기도 한다.


155쪽..jpg 오하나가 유학 도중 숨 쉴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 155쪽.


오하나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보다는 또래의 아이들처럼 무리에 소속되어 안정을 취하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이로 인해 큰 상처를 여러 번 겪는다. 끝내는 꽃뱀으로 낙인찍혀 자살을 시도한다. 그녀는 유학 과정에서 갖은 고생을 겪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어린 시기에 진정한 친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고,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IMF 속 오렌지족


이 만화는 1990년대의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소환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인물을 통해 IMF로 흔들렸던, 오렌지족의 최후와 당시의 사회상을 담는다. 이 점도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1990년대 오하나와 같은 나이였던 필자는 유학을 꿈도 꾸지 못했다.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송아람의 이 텍스트를 읽고 ‘이곳’의 생활만큼 ‘그곳’ 사람들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312쪽..jpg 유학생활 중 오하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 박혜령으로부터 아빠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혜령은 아버지의 부도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오게 된다.



유학생활 중 오하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 박혜령으로부터 아빠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친구는 아버지의 부도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오게 된다. IMF 이후 사정이 어렵게 된 것은 오하나의 친구 최준혁도 마찬가지다. 오하나 보다 먼저 유학을 떠난 그는 아버지 사업이 어렵게 되자,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다. 모두 IMF 때문이다.


게다가 작중 아빠의 말처럼, 유학은 어쩌면 이들에게 도피일 수도 있었다. 유학 생활에서 외국어를 익히는 것이 장점일 수 있겠으나, 그것만으로 유학이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국내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 유학 가는 일부 학생들의 삶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이민이라는 것 자체가 더 나은 곳을 향한 몸짓도 아니다. 그곳으로 이민 간 “외삼촌과 외숙모는 오릴리아 변두리에서 담배와 복권, 식료품 따위를 파는 상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갈 뿐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탈출구를 찾고, 꿈을 좇고 사랑을 좇는다. 송아람의 《오렌지족의 최후》는 그럭저럭 잘 사는 ‘그들’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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