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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07. 2021

김종식  시인의  「개의 시간」에 대한 단상






 사원의 오후는 개의 꿈과 함께 늘어지고 있다

 미얀마 법당에선 신발을 벗고 입장을 한다

 문턱 아래, 수백 개의 슬리퍼는 흩트림 없이 주인을 기다리는데, 사시사철 오뉴월인 미얀마 개들, 게송을 자장가 삼아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눈곱만한 예의도 없는 녀석들, 어쩌다 뒷일이라도 봐놓으면, 주위에 있던 신도들 매화틀 물리듯 달려간다

 옥체에서 나온 사리(舍利)급 대접을 받는 축생(畜生)의 시간

 전생을 오롯이 파고다 쌓는 일만 하다 환생한지라, 현생의 시간을 당당하게 누리고 있다     


 나는 가끔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십여 일 넘게 오매불망, 죽은 노인을 기다리던 시골 개의 우묵한 눈을 본 적이 있다

 굶주림 끝에서도 낯선 유혹을 마다하던 그 눈의 깊이를 갖고 싶다 

 비굴한 내 눈을 붉히게 했던 그 무한신뢰의 눈    


 바람이 차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뜨거운 눈이 하나 있다

 철 지난 안면도 해변, 오가는 차들을 기웃거리며 휴가지 잔해를 더듬던 핏기 서린 눈, 웃자란 털에 가려 가느다란 빛만 겨우 빠져나오던

 실제 맞닥뜨린 것은 눈이 아닌 뜨거운 빛 같은 것이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바닷바람을 견디며, 희미해져 가던 주인의 체취는 얼마나 더 오래 남아 있었을까


 법당에 누운 무법자의 눈곱 주위로 한 무리 파리 떼가 내려앉았다 간다 

 견성한 보살님들은 꼬리만 한번 실룩거릴 뿐, 오수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는 다른 시간에 맞춰진, 또 하나의 눈이 있다 

 평택 국도변 해장국집 말뚝에 묶인, 낯선 얼굴을 보고도 짖지 않는, 오직 하루 두 번 던져지는 뼈다귀만 기다리는 눈

 뙤약볕 아래, 자기 몸집만 한 구덩이를 파고들어 궁금한 것 하나 없는 낙담한 눈, 아니 무심하기 그지없는    

 바로, 법당에 누운 나의 미얀마 보살(菩薩)의 눈이다 


 나의 하루는, 눈을 채 뜨기도 전 알람시계가 잠을 깨우고, 밥을 먹기도 전 외투를 입고, 차를 타기도 전 식탁에서부터 일을 하고 있다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머릿속은 벌써 하루 치 성과를 계산하고 있다


 나는 어느 견(犬)나라에 사는 어떤 견종(犬種)일까     


                                                                                          

                                                                                                    「개의 시간」 전문 








소재가 흥미로우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그는 법당에서 편히 쉬고 있는 개(犬)를 쳐다보며 개들의 일생에 대해 생각한다. 화자가 개를 쳐다보는 이유는 개들의 삶이 나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눈을 뜨기 ‘―전’에, 밥을 먹기도 ‘―전’에, 차를 타기도 ‘―전’에 알람시계는 화자를 깨운다. 시인은 외투를 입고 식탁에서부터 일을 시작하는 여유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전’이다. 어쩌면 나의 삶은 일이라는 목적을 위해 기계처럼 태어난 사람 같기도 하다. 머릿속은 하루치 성과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기에 바쁘다. 지극히 기관(機關)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화자에게 게송(偈頌)을 부르며 코 고는 개들의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나’는 생각한다. 전생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리도 정신없이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잘 살아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나’를 경유해 깨달음을 얻게 해 준다. 개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반성하게 해 준다. 반성의 형태는 ‘눈(目)’을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에서는 응시할 수밖에 없는 개의 눈이 세 번 등장한다. 굶주림에 개의치 않고 주인이었던 죽은 노인을 기다리던 시골 개의 눈은 비굴한 내 눈과 대조된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해변을 기웃거리며 안면도 휴가지 잔해를 더듬던 핏기 서린 개의 눈은 “뜨거운 빛”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목이 묶인 채 뙤약볕 아래 두 번 던져지는 뼈다귀만을 기다리는 개의 눈은 궁금한 것 하나 없는 ‘보살의 눈’이기에 화자를 부끄럽게 한다. 이 눈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나’의 행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는 과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가. 나는 왜 용기를 내지 못하는가. 지금 이곳의 삶에서 너무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쫓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을 ‘나’와 독자들에게 건넨다. 나의 마음을 개의 눈(目)을 통해 표현한 김종식의 「개의 시간」이다.



*  김종식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2020년 『문학청춘』 등단 

*  김종식개의 시간문학청춘』 46, 문학청춘, 2020, 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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