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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07. 2021

정사민 시인의  「아직」에 대한 단상




나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오전 11시 50분, 정오에 가까워진 햇살이 창문 틈새로 새어 들었고 내 아이폰 8―PRODUCT RED, 우축 하단으로부터 거미줄 같은 금이 뻗어 나가는―의 알람(전파탐지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뻗어 아이폰의 전원 버튼 혹은 볼륨 상하 버튼 중 하나를 누른다―어떤 버튼이든 상관없다, 누르면 조용해질 테니―그러나 정확히 1분 뒤, 오전 11시 51분이 되면 다시 알람(전파탐지기)이 울리고 나는 손을 뻗어 아무 버튼이나 누른다. 오전 11시 52분-전파탐지기-버튼-오전 11시 53분-전파탐지기-버튼-오전 11시 54분-전파탐지기-버튼-오전 11시 55분-전파탐지기-버튼-(……)-오후 12시 00분-반짝반짝―이것은 ‘변주’에 해당하는 변칙 패턴으로, 내 무의식에 거미줄 같은 파열음을 만들어 내므로, 나는 실눈을 뜬 채 시간을 확인한다―아직 조금 더 잘 수 있겠군-버튼-오후 12시 01분-전파탐지기-버튼-오후 12시 02분-전파탐지기-버튼-오후 12시 03분-전파탐지기-버튼-오후 12시 04분-전파탐지기-버튼-오후 12시 05분-공상음-실눈―아직 조금 더 잘 수 있겠군-버튼-오후 12시 06분-공상음-버튼-(……)-오후 12시 10분-도입음―이것은 ‘회심의 일격’에 해당하는 리듬으로, 내 무의식에 ‘스마트폰 착신음-상사의 진화-지각-공개적인 모욕-모멸감’에 해당하는 일련의 화학작용을 불러일으켜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게끔 만드는 효과가 있다―그러나 실눈-아직 5분 더-버튼-오후 12시 11분-공상음-버튼-오후 12시 12분-공상음-버튼-나는 버튼을 누르고 잠드는 58초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오후 12시 13분-공상음-버튼-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화장실로 걸어가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는다-그것은 모종의 유체 이탈 혹은 환각-오후 12시 14분-공상음-지금 일어나면 머리를 말릴 수 있지 그러나-버튼-오후 12시 15분-몸을 일으킨 채 화장실로 걸어가는 동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현기증과 전신을 짓누르는 피로감-일찍 잤어야 하는데-그러나 결코 일찍 잠들 리가 없고-(……)-보문역-계단-에스컬레이터-우이신설선-성신여대입구역-계단-에스컬레이터-환승-계단-계단-4호선-한성대입구역-혜화역-동대문역-동대문역사공원역-충무로역-명동역-에스컬레이터-계단-10번 출구-성창빌딩-계단-지문 인식-안녕하세요-PC 전원 버튼-엘리베이터-지하 1층-카페 에쇼페-안녕하세요-입구의 의자와 테이블, 재떨이-말보르 미디움 한 개피-아이스 아메리카노-(……)-오후 2시 10분-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오후 3시 08분-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오후 4시 11분-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오후 9시 20분-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한숨-오후 10시-수고하셨습니다-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명동역-충무로역-동대문역사공원역-동대문역-혜화역-한성대입구역-성신여대입구역-계단-에스컬레이터-환승-계단-계단-4호선-한성대입구역-혜화역-동대문역-동대문역사공원역-충무로역-명동역-에스컬레이터-계단-10번 출구-성창빌딩-계단-지문 인식-안녕하세요-PC 전원 버튼-엘리베이터-지하 1층-카페 에쇼페-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오후 2시 08분-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오후 3시 04분-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말보로 미디움 한 개피-(……)―나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오전 11시 50분-정오에 가까워진 햇살-아이폰 8-새빨간-창문 틈새―우측 하단으로부터-거미줄 같은 금이 뻗어 나가는-알람―탐지-전원-혹은-상하―조용해질-무의식-의-변칙 패턴-거미줄 같은―파열음-공상-음-조금 더 잘 수―도입-모멸감―행복해-행복해서 죽을-것―모종의-유체 이탈-혹은-환각―충동-머리-현기증-짓누르는―에스컬레이터-출구-인식하는―지문-전원-안녕하세요-재떨이-오후 2시 10분-6층 건물의―5층 높이에 해당하는-옥상-햇빛―거미줄 같은-파열음-충무로역-어둠―공상-음-모욕-리듬-무의식―지금 일어나면-잠들 리가-꾸고 있었다-정오―재떨이-수고하셨습니다-안녕하세요-수고하셨습니다-안녕하세요―수고하셨습니다-안녕하세요-수고하셨습니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아직    



                                                                                               「아직」 전문






재미있는 시이다. 그의 또 다른 시 「아직도」도 흥미롭게 접했다.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어 옮겨 오면 다음과 같다. “얼마 전 중요한 지원 사업이 있었습니다만/ 작년에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신청하지 못했습니다./ 잠을 자느라 그랬습니다./ 모든 마감이/ 새벽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귀차니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시인이 떠올랐고 바쁘게 사업 지원을 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시인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그에게 존재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성실하지 않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성실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 것은 역설적으로 ‘시’ 이외에 귀찮은 것을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고, ‘사업’으로 상징되는 시스템에 대한 거부로도 읽혀서 이색적이다고 말한 것이다. 미래에 그가 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시만 생각하겠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감각은 오랜만이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내가 귀차니즘에 대해 언급했다고 해서 그가 불성실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에서 등장하는 화자는 오전 11시 50분에 깨어나 움직이는 검은 폭풍이니 말이다. 일하는 시간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 뿐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단지 그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보통 사람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시간에 게으른 사람으로 살고, 보통 사람들이 잠을 잘 때 투명한 정신으로 작업한다. 「아직」은 그가 비몽사몽 하며 견뎌낸 낮 시간의 처음과 끝을 이색적인 그릇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낮’에서 보낸 그의 삶은 어떠한가. 그에게 밤은 희망이고 선생이지만, 낮은 매번 현기증이 발생하는 장소이다. 때론 환각 속을 걸어야 하는 악조건이 넘실대는 현실이다. 그래서 악몽을 꾸고 있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아직」은 어렵지 않게 무의식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 언어가 부들부들한 두부 면발처럼 배치된다.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로 시가 완성되는 것은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는 무의식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단숨에 작품을 완성한 것 같다. 물론 완성된 후, 퇴고했겠지만 무의식 속에서 움직이는 변칙 패턴을 통해 생생한 리듬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이 리듬에는 ‘웃프’가 아닌 ‘씁프’가 놓인다. 담배 피우며 새벽에 홀로 서 있는 화자의 모습과 지하철 안에서 재빠르게 산책하는 화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담배를 물고 있을 것 같다. 담배 연기가 그의 몸처럼 흐르고 흐를 것 같다.     



* 정사민, 「아직」, 계간 『파란』 19호, 파란, 2020, 101~104쪽.

* 정사민 시인:  2019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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