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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06. 2021

희음 시인의  「동거」에 대한 단상








이런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려 뜻밖의 새소리 

나는 아직 안 끝났구나     


남겨질 것들, 이라고 네가 말할 때

나는 나만 생각하면서 슬펐다     


내가 울 때 왜 너는 따라서 울지 않는지

눈물을 키우는 

나의 얼굴 앞에서 

생각과 슬픔이 가능하다는 건 어떤 것인지

너는 묻고 있었을까      


도시와 새가 아직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 게 신기해      


너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앓았지만

이제 그걸 따라서 하는 내가 있다      


남겨진 것이 남겨진 채로 있는 것은 좋지 않아

남겨진 이후에는

남아야 하지      


없는 것과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해     


회벽들 틈에서

날개를 접고 우는 새가 있고    

 

나는 

새의 

울음을 

본다      


                                                        「동거 전문








희음 시인의 첫 시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별에 대해 다룬다. 단순한 이별이 아닌 오래도록 만날 수 없는 이별이다. 이것을 죽음이라는 단어로 확장해 이해해도 괜찮을까. 일부의 독자들은 제목이 동거이기에 남녀 간의 사랑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느끼기에는 이 작품은 너무나 느리고 무겁고 진중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당신 곁에 서 있던 자가 그를 떠나보내며 부른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한 너와 나의 어조가 그것을 증명한다.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여만 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시공간을 넘어 내가 움츠리고 있는 작은 이 방까지 전달되는 것 같다. 아픔이 아픔이 될 때까지 거짓 없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 표정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만’으로 그녀의 첫 시집이 메워지지는 않겠지만, 첫 작품이 이렇게 눈물 나는 장면이니 희음 시인의 삶과 앞으로 그녀가 걸어가게 될 길에 대해 자연스럽게 몽상하게 된다. 슬픔 이후 당신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변화의 기복이 크든 크지 않든 이 슬픔은 그녀를 더 성장하게 해 줄 것 같다. 


이 시에서 세 장면이 인상적이다. 우선 관형사 ‘이러한’의 줄임말인 “이런”을 통해 당신의 목소리를 강조한 부분이다. 화자는 “이런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라고 말한다. 이 목소리는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당신의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첫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따라다닌다. 두 번째는 남겨진 ‘채’로 있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을 구분하는 태도다. 의존명사 ‘―채’는 있는 그대로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시인은 이 ‘순간’의 시간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 자체를 강조한다. 이것은 타인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어서 더 짠하게 다가온다. 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모습으로도 읽힌다. 두 번째 것은 세 번째 것과 함께 따라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마지막 연이다. 새의 울음에 해당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본다’로 마무리함으로써 애도 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애도의 자세가 조금 더 짙게 풍겨온다. 당신이 보고 싶다. 그곳에서 안녕하신지. 편히 잘 계시는지.



* 희음동거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걷는 사람, 2020, 11

* 희음 시인시 쓰고 공부하고 움직이는 사람. 2016년 창문의 쓸모」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부터 여성주의 일상비평 <>을 발행편집하며 비평에세이를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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