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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11. 2021

전호석   시인의 「라이브러리」에 대한 단상






밤새 거북이가 알을 낳고 있는 해안, 엉킨 남녀가 뒹군다 바다를 향해 사람들이 서 있다 폭죽이 발사된다 폭죽을 들고 있던 손이 터진다 고요해 하지만 휘몰아치는군 알을 묻은 거북이는 생각한다 노래를 부르는 일은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와 폭죽 그렇다는 전망 사람들의 얼굴이 번쩍거린다 휴대폰을 계속 바라본다 겨울은 오, 내 것이 아니야 공기가 젖어 간다 그녀는 그가 될 수 있을까 파충류의 알은, 어떤 파충류의 알은 온도에 따라 암수가 정해진대 그게 유행이래 그건 유행이 아니야 남자는 말하고 여자는 의심한다 서로를 굴리면서도…… 같은 눈을 가지고 이것저것을 다르게 본다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코끼리가 튀어나오고, 상상은 할수록 쓸모없지 겨울이야 여름이고 그건 온도에 따라 다르니까 남녀는 슬픈 얼굴로 굴러간다 물고기가 있네 물고기 떼가 살아 있는 하마를 뜯어먹는다 뜯긴 살들이 나풀거리고…… 시간이 없지 시간이 없고 사랑은 아아…… 온기 없는 알은 프라이가 될 뿐이고 나는 말이지…… 바다는 알까 벼락 치는 날 하늘과 땅은 거대한 배터리고 우리는 뜯겨 먹힐 온도를 찾아 헤맨다 바다에 길은 없고 사랑아 세상은 녹슬어서 물풀이 달라붙어서 거기, 거기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비가 산책로의 사람들을 꺼트리고 온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몸은 다른 몸으로 들어오고 반대편 해안까지 대양을 건너 해안에      


                                                                                                  「라이브러리」전문 




라이브러리(library)는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분 프로그램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성질을 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목적에 따라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이다. 시인은 이 개념을 제목으로 걸어 놓았으니 분명히 이 기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는 무슨 이유로 이 개념에 무게 중심을 두고자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골몰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라이브러리 사용법을 온도와 연결시킨다. 주변 온도에 영향을 받아 암수가 구별되는 파충류의 알에 대한 사연을 통해 ‘라이브러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파충류의 생물학적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과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화자는 이러한 능력의 부재(不在)로 인해 다가갈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해 말을 건네고 있다.


그렇다면 화자는 왜 하필 이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가. 그것이 관건이다. 파충류의 알이 부화되는 ‘온도’에 정서를 쏠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상황 효과는 어떤 목적을 위해 향하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라이브러리적인 온도이다. 화자는 “어떤 파충류의 알은 온도에 따라 암수가 정해”진다는 명제를 놓고 지인(여자)과 신경전을 벌인다. 생각해보면 계절의 이름을 명명하는 것도 온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파충류의 알은 적당한 온도를 만나지 못하면 생명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다. 오로지 프라이로만 쓰인다. 따라서 이 시의 세계관에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값지다. 


그래서일까. 화자는 ‘온도’로 상황이 변하는 성질에 관해 관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우리는 뜯겨 먹힐 온도를 찾아” 경계하며 계속해서 “온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지 모른다. 이 시에서는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능력’ 자체를 넘어 이상적인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방식은 바람의 형태로 머물 수 있을 때 아름답지 않을까. 라이브러리 방식은 이상적일 수 있으나 체온이 있는 대상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운명은 불완전할 때 아름다운 것이니까. 시처럼.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속성을 사랑의 영역으로 확장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시도 사랑의 화법을 쫓아간다. 이 시는 우리들에게 “엉킨 남녀”를 생각나게 해 주고 남자의 가슴을 비틀어 버린 여자와 여자의 가슴을 움켜쥔 남자가 “슬픈 얼굴로 굴러”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무엇인가가 이뤄질 수 있는 또는 없는 미래의 순간을 응시하게 된다. 온도 조절의 부재로 인해 결핍된 모습을 제시했으니 당연히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 한편 만으로 전호석의 시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시편들을 찾게 된다. 그는 왜 ‘온도’ 조절과 같은 마법에 손을 뻗은 것일까. 



* 제목이 비슷한 그의 또 다른 작품 「라이브러리언」에서는 자신의 방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책들과 교감한다. 시인 역시 누군가의 흔적을 탐닉해야 하는 존재이다. 이 시는 그런 풍경을 담았다. 그런데 풍경은 풍경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풍경을 쳐다보는 ‘나’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섞인다. 이 시에서 적힌 “조용한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운다”, “나는 나를 불쌍하게 여겨야 한다 그럴 줄 알아야 하고 닥치고”라는 구절에서 잠시 멈추었다. 전호석 시인이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그의 이야기를 무의식적으로 찾게 된다


* 전호석라이브러리계간 파란』 19파란, 2020, 96~97

* 전호석 시인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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