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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16. 2021

오늘  시인의 무게에 대한 단상

오늘 시인의 시집 『나비야, 나야』의 무게





장미가 멈춘 북쪽은 신들의 방향

 

칼새는 사몽 속으로 날아오르면 일 년 동안 땅을 밟지 않고 비몽의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생의 바깥을 서성이는 너를 만나러

네 방향으로 간다

당신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불안이 질퍽거리는 어둠을 비집고 먼저 와 기댄다 뒤꿈치가 까지는 신발을 겨우 버렸다는 말을 건넨다

첫인사로 이보다 멋진 말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가는 곳은 북쪽

거친 당신의 발에 열두 시간 비가 내리면 가시가 순해지는 방향에서 블러드문이 뜨고 거기, 장미가 시든 곳에서 잠든 나의 새

 

밤이 오지 않아 바람길만 넓어질 때 잠들기 전 팔의 높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당신의 보랏빛 눈두덩이 위태로워 바람도 침을 묻혀가며 천천히 당신을 센다

팔을 조금 내려도 되겠습니까

 

불면의 바닥으로 흩어지는 것들을 토닥이며 당신이 묻는다 하현달이 더 아름다운 이유가 생각났나요

아니에요 저건 그냥 달

 

테레베강 하류에 고여 지금은 우리가 닫힐 차례

스무여드레 스무아흐레 다음은 그믐 꼭 끌어안은 우리

 

눅눅하게 들켜지는 그믐들

 

*스너글러(Snuggler): 포옹만 해주는 직업.

 

                                                    「스너글러」 전문

 



 

 


빨강을 묻는 나를 위해 춤을 추는 너

허벅지가 맑아서 순서도 없이 색깔들이 피어올라

 

네 춤에는 툭 치면 넘칠 것 같은 물잔이 있어

 

입술이 번졌구나, 붉은 뺨을 가지기 위해서는 울음의 공기를 조금 빼야 하지

우리의 흰 머리카락은 괜찮은 하루들이었고 빨강을 감춘 건 너였을까 이제 이것은 농담이야

 

네가 사라졌다 내 농담이 그렇게 싫었나

달이 차오르지 않아서 모르겠네

빨강을 못 본다고 해서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선명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돌아서서 너의 손목을 묻는 흐릿한 사람들

네가 없는 나는 얼룩이 되는구나

 

너를 빨강해, 중요한 말일수록 몸속 가장 단단한 뼈에 박혀 꺼내기 힘들다는데 너는 살짝만 무릎을 굽혀도 보이는 계절

 

잿빛 동맥을 쥐고 와장창 웃는 푸른 꽃들 나를 위해 빨강을 췄구나

네 발등에 입을 맞추고 모닥불을 피워놓을게

가자 우리의 숲으로

네 푸른 피는 나무를 타고 오르는 선명한 리듬 완벽히 이해된 빨강이야 네 손가락이 바싹 마른 내 명치를 콕,

 

펑펑 쏟아지는 빨강

 

* 마녀가 춤을 추는 4월 마지막 날의 밤.

 

 

                                               「발푸르기스의 밤」 전문

 

 


 


 

꽃말은 평행선에 갇힌 무신론자들이 기록한다 안개꽃의 꽃말을 간절한 마음이라고 적으며

안개를 발화시킨 눈물은, 지운다

 

*

 

4월의 말은 안개에 갇힌 시간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한 프리피야티

하늘에서 안개꽃이 한꺼번에 흩날렸을 때

뛰쳐나가 함박, 하얀 송이들을 맞으며

축제를 즐긴 사람들

 

엄마- 밖으로 나와 보세요 꽃눈이 와요 우리, 붉은 비쉬반카를 입고 춤춰요

 

안개꽃이

노란 대관람차와 아이들의 낮잠 침대를 끌어안고

타오르는 새벽 속으로

 

산딸기꽃이 피는 풍경의 염기서열마저 끊어진 자리

붉게 타버린 나무들의 정령만 안개로 남아

가장 먼 곳의 꽃을 피워 올린다

 

* 프리피야티와 체르노빌은 현존하는 최대의 유령도시. 원자력 발전소가 폭파되었을 때 위험성을 전혀 모르는 주민들이 방사능 낙진들이 눈꽃처럼 예뻐서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 맞았다는 당시 생존자의 증언.

 


                                                   「안개꽃」 전문







오늘 시인의 시 세 편을 기다리면서 2017년 초에 간행된 『나비야, 나야』를 읽는다. 이 시집에서는 고독이 느껴지고 불안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화자와 함께 사랑한 애인의 이야기가 그림자 형식으로 적혀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러한 이유로 조금 더 앞으로 가까이 고개를 내밀어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그녀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게 의미가 다가와 주문을 걸게 된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느리게 읽어보자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시는 만나면 만날수록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는 것 같다. 매력적이면서도 도도한 남자이거나 매력적이면서도 도도한 여성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하게도 자꾸 눈길이 간다. 한 번 쳐다볼 때는 잘 모르겠지만 두 번째는 처음보다 낫고 세 번째는 더 낫다. 이러한 효과는 그녀가 운용하는 이미지 탓이 크다.


이번에 그녀가 들고 온 3편의 신작 시 「스너글러」, 「발푸르기스의 밤」, 「안개꽃」은 제목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나비야, 나야』에서도 이러한 제목 짓기는 여러 번 있었다. 가령, 가짜 미끼로 하는 플라이 낚시를 뜻하는 「타잉」, 빛과 어둠이 서로 바뀌는 시간을 다룬 「개와 늑대의 시간」, 기상주의보의 하나인 「파랑주의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헝거, 게임」, 헤어진 연인에게 집착하며 보내는 메일인 「줄리엣 메일」, 영화 해리 포터에서 기억을 지우는 주문인 「오블리 비아테」 등은 사후적으로 제목이 재생된 것이 아니라, 제목이 생성된 이후 주변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에서 제목과 본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오늘 시인의 경우는 사냥할 대상을 먼저 선점한 후, 질주한 인상을 준다. 이 방식은 기다리는 시와 대조적이다.


‘스너글러’는 포옹만을 해 주는 직업이다. 시간당 일정액의 돈을 받고 손님에게 안기기도 하고 간지럼을 태우기도 하지만 성적 본능을 자극하는 일은 없다. 「스너글러」에서 시인은 ‘-만’에 힘을 주었다. 즉, 포옹‘만’하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으로 짐작된다. 시인은 이 제목을 통해 무엇을 끌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장미가 멈춘 북쪽은 신들의 방향

 

칼새는 사몽 속으로 날아오르면 일 년 동안 땅을 밟지 않고 비몽의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생의 바깥을 서성이는 너를 만나러

네 방향으로 간다

당신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불안이 질퍽거리는 어둠을 비집고 먼저 와 기댄다 뒤꿈치가 까지는 신발을 겨우 버렸다는 말을 건넨다

첫인사로 이보다 멋진 말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가는 곳은 북쪽

거친 당신의 발에 열두 시간 비가 내리면 가시가 순해지는 방향에서 블러드문이 뜨고 거기, 장미가 시든 곳에서 잠든 나의 새

 

밤이 오지 않아 바람길만 넓어질 때 잠들기 전 팔의 높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당신의 보랏빛 눈두덩이 위태로워 바람도 침을 묻혀가며 천천히 당신을 센다

팔을 조금 내려도 되겠습니까

 

불면의 바닥으로 흩어지는 것들을 토닥이며 당신이 묻는다 하현달이 더 아름다운 이유가 생각났나요

아니에요 저건 그냥 달

 

테레베강 하류에 고여 지금은 우리가 닫힐 차례

스무여드레 스무아흐레 다음은 그믐 꼭 끌어안은 우리

 

눅눅하게 들켜지는 그믐들

 

*스너글러(Snuggler): 포옹만 해주는 직업.

 

                                                           「스너글러」 전문




장미가 멈춘 북쪽은 신들의 방향, 칼새는 시몽 속으로 날아올라 비몽의 사람들을 찾는다.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것은 화자에게 소중해 보인다. 화자뿐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찾는’ 행위는 애잔함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화자는 무엇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생의 바깥을 서성이는 너”일까. “뒤꿈치가 까지는 신발을 겨우 버렸다”며 화자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는 당신일까. 분명한 것은 당신의 모습이 온전치 않다는 것이다. 당신은 흘러내리는 불안을 부둥켜안고 서 있다.


너무나도 추워서 북쪽은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가 가는” 북쪽은 붉은 달이 뜨고 장미가 시든다. 북쪽으로 몸을 옮기는 행위는 무엇일까. 북쪽으로 걸어가는 행위는 옷을 따뜻하게 입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북쪽에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다.


당신은 보랏빛 눈두덩이를 가졌다. 화자는 당신의 눈이 위태롭다고 느낀다. 당신은 여전히 화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긴 두 팔로 당신을 끌어안는다. 당신의 두 팔은 점점 내려가고 화자는 당신의 이러한 행동을 저지하지 못(안)한다. 화자는 당신을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화자와 당신은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당신은 화자에게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지만 화자는 수긍하지 못한다. 하지만 화자와 당신은 서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 시를 ‘스너글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여자/남자)의 이야기로 읽어야 할까. 아니면 관계의 흔들림에서 묻어 나오는 낯섦과 외로움으로 읽어야 할까. 누군가를 끌어안는 행위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데 이 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의 요소를 「스너글러」는 정성―달 이미지를 통해―을 다해 다룬 것 같다.



빨강을 묻는 나를 위해 춤을 추는 너

허벅지가 맑아서 순서도 없이 색깔들이 피어올라

 

네 춤에는 툭 치면 넘칠 것 같은 물잔이 있어

 

입술이 번졌구나, 붉은 뺨을 가지기 위해서는 울음의 공기를 조금 빼야 하지

우리의 흰 머리카락은 괜찮은 하루들이었고 빨강을 감춘 건 너였을까 이제 이것은 농담이야

 

네가 사라졌다 내 농담이 그렇게 싫었나

달이 차오르지 않아서 모르겠네

빨강을 못 본다고 해서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선명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돌아서서 너의 손목을 묻는 흐릿한 사람들

네가 없는 나는 얼룩이 되는구나

 

너를 빨강해, 중요한 말일수록 몸속 가장 단단한 뼈에 박혀 꺼내기 힘들다는데 너는 살짝만 무릎을 굽혀도 보이는 계절

 

잿빛 동맥을 쥐고 와장창 웃는 푸른 꽃들 나를 위해 빨강을 췄구나

네 발등에 입을 맞추고 모닥불을 피워놓을게

가자 우리의 숲으로

네 푸른 피는 나무를 타고 오르는 선명한 리듬 완벽히 이해된 빨강이야 네 손가락이 바싹 마른 내 명치를 콕,

 

펑펑 쏟아지는 빨강

 

* 마녀가 춤을 추는 4월 마지막 날의 밤.

 

                                             「발푸르기스의 밤」 전문



이 시에서 ‘빨강’은 무엇일까. 화자는 무슨 이유로 ‘빨강’을 묻고 당신에게 당당하게 ‘빨강’ 한다고 말할까. 빨강이 무엇인지에 따라 이 시는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이 시에서 화자는 당신의 행동에 크게 흔들린다. 그렇다면 ‘빨강’을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말로 상상해 보면 어떨까. 지독한 사랑이 아니더라도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언어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언어가 아니라면 화자에게 “펑펑 쏟아지는 빨강”처럼 벅찬 존재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독자들은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빨강의 의미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만의 독특한 시적 형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밀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몸에 묻은 흔적을 외면하기 힘들다. 「스너글러」도 그렇고, 「발푸르기스의 밤」도 그렇다. 동일한 방식으로 「안개꽃」도 그렇다. 오늘 씨는 ‘나’와는 시공간이 다른 이야기를 지금, 여기로 불러와 우리에게 생각할 것들을 제공해준다. 오늘 시인의 시는 섬세한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2년 전에 출간한 오늘 시인의 시집 『나비야, 나야』 에 수록된 「저울을 베고 눕는 것들」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 모든 것을 무게로 표현하지

발끝의 가벼운 만남과

가슴을 누르는 아픔도

정확히 숫자로 보여줄 수 있지

 

네가 내 몸에 오르면

제로였던 시간이 깨어나

나를 움직이게 하지

내 눈빛의 바늘은

상수리 숲을 지나 화려한 저녁 식탁을 가리키지

네가 내 손가락에 끼워주던 약속의 무게

몇 온스의 와인을 삼킨 입술의 무게

마지막 밤의 절정은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네가 내려간 자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무게의 흔적

탄력 좋은 스프링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조금 비뚤어진 눈금이 아픈 건

너와 내가 나누었던 사랑이

0은 아니라서

 

                                      「저울을 베고 눕는 것들」 전문



이 시 역시 다양하게 읽을 수 있겠지만, 특히 나와 같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익숙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 같다. 그 이유는 ‘나’가 아닌 ‘당신’의 입장을 헤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내 무게보다도 당신의 무게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네가 내려간 자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 무게의 흔적”을 셈하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몸의 흔적을 닦아내는 당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 씨의 시들 중 이러한 시가 더 좋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시 ‘제목’이 먼저 선행한 것이 아니라 ‘삶’이 먼저 선행했기 때문이다.




* 오 늘 시인:  2006년 <서시>로 등단. 시집으로 『나비야, 나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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