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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24. 2021

민구  시인의 「송림동」에 대한 단상






십 원에 한 대야          


주머니를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신발을 벗어도 보이지 않았다      


양말을 벗으면 감자가 다섯 개 

출출한 밤을 달랠 수 있지만 

그는 가방을 뒤지며 말한다     

     

우유는 가져간다         

 

그건 엄마가 먹을 서울우유

내일 십 원을 줄 테니 돌려주세요

말하려는 순간 나는 커버리고           

열 대 얻어맞은 얼굴로 삭아서 

삼십 년이 지난 골목에 서 있다    

      

어디선가 우윳빛의 뽀얀 아이들 

이 골목으로 걸어오는데   

        

삥 뜰을까 생각했지만 

나는 그들이 지나가도록 한 발 물러서서 

안녕, 좋은 아저씨야 하는 표정으로        

  

주머니 속의 백 원짜리 동전을

죄진 사람마냥 만지작거렸다        


                              「송림동」 전문 



   


1호선 끝에 위치한 축현역(杻峴驛)1) 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송림동’이 나온다. 내가 태어난 곳이다. 수도국산(만수산)이라고 불렀던 이곳을 동네 주민들은 달동네로도 불렀다. 다닥다닥 붙어살았다. 젊은 아버지와 서울에서 만나 이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지금의 나보다 많이 어렸던 예쁜 어머니는 나를 업은 채 방을 구하러 다녔다. 하지만 애 있는 가족에게 선뜻 방을 내주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누이와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이 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사진 속 풍경은 가난했다. ‘송림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기억의 조각이다. 이런 나의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집어 든 잡지에 실린 이 시를 읽고 멈추게 되었다. 같은 동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멈추게 할 수 있다니. ‘송림동’은 이처럼 사연이 많은 동네였다. 나는 민구 시인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그가 이 동네에 살았다면 작은 동네였으니 한 두 번은 스쳐 지나갔으리라.  


「송림동」은 유년의 스케치다. 하지만 이 가벼움 속에는 다소 무거운 것이 담겨 있다. 과거의 ‘나’를 통해 지금 현재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태도를 반성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이 반성은 단순히 반성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에 단순한 회상 정도로 치부할 수 없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진부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이 진부함이 현재와 맞물린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화자는 동네 형들에게 삥 뜯겼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동네 형들이 그에게 다가와 가방을 뒤지며 어머니에게 줄 서울우유를 가져가려고 할 때 화자는 “그건 엄마가 먹을 서울우유”라며 용기 있게 뿌리치지 못했다. 이처럼 머뭇거렸던 태도가 화자의 유년 시절을 대변하는 것 같다. 


시간은 흘러 “열 대 얻어맞은 얼굴로 삭아” 현재 시간 속에 놓인 화자는 과거의 ‘나’처럼 주눅 들지 않는다. 키도 많이 큰 것 같고 덩치도 든든하게 커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삥 뜯길 일이 없다. 어린 시절의 ‘나’가 야속했는지 장난이 발동해 예전 동네 형들처럼 어깨를 높이려는 상상도 해보지만 여전히 “죄진 사람마냥” 동전을 굴리며 용기 내지 못했던 ‘나’를 응시한다. 


이 화자에게 유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무슨 이유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하고자 했던 것일까. 왜 그는 이 시에서 ‘어머니’를 이야기했던 것일까. 그는 무슨 이유로 어머니에게 우유를 가져다주려고 했을까. 자신이 먹을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유를 챙겨 어머니에게 가져다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이 이상하게도 걸린다. 


민구 씨의 언어는 욕심을 덜어낸 살이 느껴진다. 아직 읽지 못한 민구 씨의 첫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를 펼쳐본다.   



1) 동인천역의 본래 역명은 杻峴驛(축현역)이다. 이 역명은 역 주변의 고갯길인 ‘싸리재’를 한자 이름을 빌려와 만든 것이다. 싸리재는 배다리 철교를 지나 경동 사거리에 이르는 고개로 동인천역에서 길병원과 인형극장 사이의 도로로 진입하면 전면에 보이는 고갯마루이다. 이 각주에서는 여러 매체를 종합해 ‘축현역’에 대한 정보를 짧게 기술 했다.

        





* 민구, 「송림동」, 『내일을 여는 작가』 76호, 한국작가회의, 2020, 92~93쪽. 

* 민구 시인: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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