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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Feb 27. 2021

변신- 빛이 놓인 그곳을 향해

피아트 룩스(FIAT LUX)의 새로운 앨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1)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와 포프 엑스 포프(Pope X Pope)로 활동했던 김환욱이 피아트 룩스(FIAT LUX)로 이름을 바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과거 그의 손가락이 기괴하고 난해했다면 이제는 무게를 덜어내고 전혀 다른 음악을 주조한다. 그는 크게 회전하였다. 하지만 이 변신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히치하이커와 포프 엑스 포프 시절 앞만 보고 달려간 그의 이력 때문이었는지 당시 그의 음악은 “올해의 문제작”이거나 “올해의 도발적 작품2)으로 호평을 받을지언정 독자뿐만 아니라 음악가 자신과도 멀어졌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에게 뭉뚱그려 지난날을 ‘후회(後悔)’ 한다고 표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후회 자체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모든 것을 걸고 작업했던 음악이 괴물이든 악이든 공포든 저주이든 숭고이든 빛이든 무용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그가 후회한다고 말한 것은 후회가 아닌 변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내 눈에 비친 과거의 작업이 괴기스럽게 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역으로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한심하다고 혀를 칠 수도 있으니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 없다. 그는 벗어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지금, 여기의 음악을 충실히 만들었을 뿐이다. 


김환욱은 총알이 장전된 무기를 가슴에 겨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나를 죽였다. 파괴했다. 밀어냈다. 아니다. 음악이 그를 떠났다. 오랜 시간 한 방향만을 바라보며 걸어왔던 탓에 구두 밑창이 닳고 닳았다. 이제는 새로운 신발을 갈아 신을 때가 되었다. 그의 몸속에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음악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 응고된 상태로 멈추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를 새로운 곳으로 이끈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순히 끝이나 벽에 마주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 몽상한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랑만큼 타자를 확실히 회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까다로운 김환욱도 마찬가지다. 이 사랑은 김환욱이 쳐다보는 대상과의 사랑일 수 있고 연민과 동정일 수도 있다. 그는 이제 세상을 그렇게 쳐다본다. 이 힘은 피아트 룩스(FIAT LUX)의 음악을 큰 진폭으로 흔들어 놓았다. 그의 새로운 앨범 《The Land of Light, The Land of Beyond》3)에 수록된 다양한 사연들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은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사랑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졌고 이 힘 위에서 마음껏 새로운 곡을 연주한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새로운 예술가의 탄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나’가 ‘나’를 밀어낸 후, 공터에 새로운 ‘나’를 옮겨 놓았으니 말이다. 얇지만 빛나는 이 앨범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 적어도 사랑을 딛고 일어난 음악이니 기대해도 좋다. 그는 변신(變身)하였다.


예술의 영역에서 회전은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예술가가 가슴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한 후, 또 다른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이 주제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텍스트를 떠올려 본다면 이 서사만큼 눈물 나고 매력적인 것은 없다. 고난과 역경을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독자인 ‘나’도 당신과 같은 처지라는 점에서 눈물이 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상승하는 서사가 일관적이진 않다는 점이다.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와 장 위긔 앙글라드 감독의 「베티블루 37.2」처럼 창작자가 끝에 서 있는 서사가 있는 반면, 어떤 서사는 예술가라는 상징적인 기표를 상실하게 되는 과정에서 작가탄생 서사가 펼쳐진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 후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서사다. 틸리 월든의 「스피닝」이 이에 속한다. 설치 미술가 차이 구어 치앙은 어떠한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노쇠한 할머니를 위해 바쳐진 음악이지만 관객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자아낸다. 그는 폭죽으로 언어를 표현하는데 관객이 없다면 그의 예술은 희석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그에게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의 유명세를 고려한다면 모순일 수도 있겠지만 이 행위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처럼 내 안에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나’를 발견하는 것은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움을 지향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처럼 작가탄생 서사는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숨죽이며 지켜보게 된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변주된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 해방하고 성장시킬 수 있느냐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김환욱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키를 높였다. 누군가는 나의 이러한 호평에 반기를 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예술을 보는 기준을 자유다. 사랑이다. 생명이다. 죽음이다. 오랜 시간 자신의 발목에 묶인 두꺼운 쇠사슬을 스스로 끊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이런 쇠사슬 하나쯤은 달고 있지 않은가. 알면서도 모험을 이행하지 못하지 않는가. 우리는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관성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것을 이행한 어느 한 아티스트의 뒷모습에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환욱은 그것을 현실에서 이행했다. 


피아트 룩스(‘FIAT LUX’)라는 뜻은 ‘빛이 있으라’다. 김환욱은 성경의 한 구절을 빌려 왔다. 이 구절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 낼 수 있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이 빛은 빛과 어둠 사이를 횡단하는 빛이 아닌 손바닥에 와 닿으면 따뜻한 그런 빛을 닮았다. 빛으로 인해 이로운 것들이 펼쳐지는 느낌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그는 몸속에 흘러 들어온 자신의 온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그는 그렇게 되길 굳게 믿고 기도한다. 호두처럼 얼굴 근육을 쭈그려 온 힘을 다해 애쓴다. 또한, 그의 빛은 우리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 지점은 단테가 『신곡』 천국 편에서 최종적으로 도착한 “고귀한 빛”4)의 지점 인지도 모른다. 이 빛을 본 단테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발언했으니 김환욱이 지향하고자 하는 그곳과 그곳을 향한 의지도 그곳을 향해 뻗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방식의 숭고(崇高)다. 마지막으로 이 빛은 시작 지점을 표방한다. 예술가는 신의 입장이 되어 새로운 예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듯도 하다. 위의 세 요소는 다소 낭만적이지만 이러한 낭만은 간곡한 믿음을 경유해 드러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실재에 와 닿는다. 믿음은 눈을 멀게 하는 동시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꿔준다. 그래서 믿음은 독을 든 성배이자 가능성의 시작이다.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 시절 첫 번째 앨범-《Insatiable Curiousity》


그에게 새로운 앨범에 대한 작업 노트를 요구했다. 더불어 과거도 요구했다. 독자들을 대신해 묻는다. 김환욱 당신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의 음악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 시절 발매한 《Insatiable Curiousity》는 절망의 기운”5)이 맴돈다고. 성스러움보다는 공포감으로 설득시키는 교란적 장치들은 언뜻 거부감을 안겨준다고. 혹자는 세상의 종말을 그린 듯한 “어두운 기운6)이 웅장하게 다가와 매력적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말해 종말 후의 모습을 공포-고조-비탄-절규로 이어지는 하나의 서사가 독특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2011년에 진행되었던 이 팀의 작업은 힐링과는 상관없는 존재론적인 감정과 물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둡고, 칙칙해서 불편하지만 웅장한 힘이 떠받치고 있다. 특정한 개념에 잡히지 않는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당시 평자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두 번째 앨범 작업은 더 세게 등장했다. 


포프X포프(Pope X Pope) 시절 두 번째 앨범-《The Divinity and the Flames of Furious Desires》


5년의 세월이 흘러 제작된 포프 엑스 포프(Pope X Pope)의 음악은 어떠한가. 이 앨범 또한 첫 번째 작업의 연장선 속에서 이뤄진다. 전작에서도 다크 앰비언트나 드론을 비롯한 수많은 어두운 장르를 섞어내 맨 정신으로 듣기는 꽤 벅찬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포프 엑스 포프는 거기서도 가장 어둡고 기이했던 구간들을 배로 확장7) 시켜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종교적인 암시와 비유로 앨범을 채웠던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더 깊이 자신의 음악을 밀고 나가 밑바닥까지 짚어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주제와 음악적 결과물”8)이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럴 때 난해함과 기괴함은 엉터리 난해함이 되지 않고 예술을 위한 이행이 된다. 모험을 이행하고자 했던 그 순간이 순결하다면 그 길은 새로운 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프 엑스 포프 에게는 이 여정이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대중을 잃고 예술을 얻었다.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수 있는 독자가 적다는 것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 고독을 감내한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중계도 관객도 없는 축구 경기가 가능하겠는가. 누군가는 예측 가능한 여정이었기 때문에 덜 고독했을 수 있고, 어쩌면 그들은 고독을 자랑했을지도 모른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만으로 고독하게 서 있기는 쉽지 않다. 이런 원초적인 지점이 포프 엑스 포프 에게 가장 힘겹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의 몸은 닳고 닳아 피폐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구체적이지 않은 ‘숭고’의 순간을 잡으려고 했다. 처음부터 이 작업은 불가능했지만 강직한 믿음으로 인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쳐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포프 엑스 포프의 음악은 빛났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와 같은 음악은 김환욱의 몸에서 재생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아니 다행스럽지만 그는 이제 이 작업을 동일하게 반복하지 못(안)한다. 어쩌면 이러한 여정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짧은 인간의 생. 그는 이 시간 앞에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도 많이 바뀐 탓인지 예전의 관성을 습관처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피아트 룩스(FIAT LUX)로 이름을 바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건축물을 세웠다. 김환욱의 음악은 크게 회전하였다.      



눈을 떠라

대자연의 넓고 큰 땅이

높고 큰 하늘과 닿으리     


흰 새가 공중의 호수와 폭포수를 가로지르며 지상에 내려앉고 아침이 오니

언덕 위에 육신이 영혼을 바라보고 있더라 

월계수가 피 흘리기를 그치고 대지에서 발을 떼는 두 새의 깃에 노래가 깃들더라     


나의 눈을 사로잡던 불꽃이여

불타는 대자연과 병들어 가는 생명, 이 낮은 울타리에서 울고 있는 자가 있다

기쁨과 슬픔, 

이 여정을 하나의 승리로 담대히 마주하게 하라

내가 여기 있다 여기 서서 바라보고 있다

나를 향한 불꽃을 향해 열망이 광활히 나아가던 나날이여    

 

귀를 열라 

아이들은 희망에 들떠 날개를 펼치고

수평선 위에서 찬양하리     


육체여, 너의 소망이 그곳에 있다 

광야 너머로 가 너의 머리에 씌어줄 꽃을 가꾸고 우리가 노래했던 은총과 영원은 메아리친다

봄은 다시 오고 설원은 싹을 틔우니 슬픔은 냇가에 띄워두고 그곳에서 기뻐하고 있다       


지친 자와 아픈 자는 노래와 가라

그 나라에서 기도하는 어머니가 너희의 두 손을 맞잡고 축원하리

소생하는 풀과 나무를 바람은 돌보리     


죽은 것이 아니다

영혼은 육체 곁에서 춤출 뿐     


이리도 오래 피어 있으려고 흙속에서 무릎 꿇고 울었나 

하늘과 땅 위에서 우리는 화창하게 피어 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갯짓으로 처음 깨어난 너는 

빛보다 먼저 태어났다     


「우리가 노래했던 은총과 영원―FIAT LUX <The Land of Light, The Land of Beyond> 에 부쳐」 전문9) 


피아트 룩스의 새로운 앨범에 참여했던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의 김광섭 시인은 피아트 룩스의 음악을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나는 이 시에 대해 해석을 달지 않을 생각이다. 앞으로 피아트 룩스의 새로운 음악을 경험하게 될 독자들께서는 이 시인처럼 살갗에 닿은 음악을 언어로 연주해 보기 바란다. 분명히 관통하는 언어의 교집합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도 친구들끼리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놀이다. 


피아트 룩스(FIAT LUX)의 이 앨범이 특이한 것은 미술가 박호은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참여한 것이 아니라 옆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박호은에게 언어는 디자인이다. 앞서 김광섭 시인이 김환욱의 음악을 듣고 시로 표현한 것처럼 박호은은 디자인으로 피아트 룩스의 음악 세계를 그린다.   


이러한 경우라면 자연스럽게 태초에 시작된 언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언어로 갈라지기 이전의 순수하고 결백한 언어의 지점을 말이다. 그 순간에서는 태초의 언어도 춤도 음악도 그림도 노래도 모두 동일한 호흡을 가진 표현의 언어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앨범을 손에 쥔다는 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번역 불가능한 지점에 도전한 여정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앨범은 매력적이다. 


피아트 룩스의 앨범 로고를 디자인한 박호은은 FIAT Lux logo 디자인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틴어 사전을 검색해 보니 'lux'에는 '빛' 외에도 '눈'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Fiat lux)"라는 구절은 단순히 빛을 창조하는 모습이 아니라, ‘보는 것’ 즉 인식’, ‘판단’, ‘감상’, ‘통찰’ 따위의 능력을 (미래의피조물에게 개방하는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로고는 "빛이 있으라"라는 말과 함께 빛으로 차오르는 세계를 보는 눈을 표현한 이미지다. '신의 눈'을 생각하며 만들었다.”10) 그 디자인은 다음과 같다. 그의 말처럼 이 앨범은 빛과 함께 무엇인가 새롭게 차오르는 바람을 담았다. 삶에서의 새 출발이며 예술에서의 새 출발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해왔던 작업과의 거리두기다. 공터에서의 ‘첫’ 이행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음악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나’가 온전히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음악과 덜 좋은 음악의 기준을 상쇄시켜 버리는 ‘나’의 음악이 이번 작업에는 뒷걸음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연주하고자  하는 대상이 밖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예외도 있겠지만, 내 살갗에서 뽑아낸 음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몽상인 것이다. 이 지점은 나의 몽상의 영역이지만 김환욱 씨가 한번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말 그대로 이 단락은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몽상이니까.   



피아트 룩스(FIAT LUX)의 세 번째 앨범 《The Land of Light, The Land of Beyond》의 로고(logo)


그렇다면 김환욱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그는 이 앨범에 수록된 음악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내 놓을까. 그의 작업 노트를 확인해 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이 중요할까. 시인은 언어로 미술가는 선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표현하면 되는데 말이다. 음악만큼 김환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물질은 없다. 그래서 나의 요청에 의해 건네받은 자료는 직설적으로 이곳에 적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그는 큰 진폭으로 회전하였다는 것과 이 회전이 많은 대중과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는 점이다. 정말로 오랜만에 음악다운 음악을 접했다. 한 곡 한 곡 몰입하며 들었다. 김환욱은 “이 곡을 듣는 이가 삶의 위안과 평정을 찾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이 바람을 거뜬히 지켜낸 것 같다. 빛이 놓인 그곳을 향해 걸어간 첫 번째 여정이 오래도록 독자들에게 기억되길 바란다.■     


※ 이 글은 아직 발매되지 않은 피아트 룩스(FIAT LUX)의 세 번째 앨범 《The Land of Light, The Land of Beyond》 해설 초고(草稿)이다. 







1)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성경』,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9, 3쪽.  

2) 이경준, 『The Divinity and the Flames of Furious Desires』 앨범 해설. 2015. 

3) ‘FIAT LUX’의 새로운 앨범 《The Land of Light, The Land of Beyond》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작품의 의도를 따진다는 것은 작품을 의도로 환원하기 위함이 아니다. 의도와 해석의 지평선 사이에 긴장을 유지하기 위함”(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난다, 2019, 350쪽.)이라는 어느 한 평자의 말을 상기하면서 김환욱의 작업 의도를 소략하게나마 간략히 적어보면 ‘FIAT LUX’의 음악을 즐기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이런 의도에서 그의 작업 의도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다. 이 내용은 이미 공개되었거나 그가 언급해 준 내용이다. 우선 ① 「Aurora」는 2014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영혼의 시 뭉크’ 전시회에서 본 그림 「태양」의 사방으로 발산하는 빛이 인상적이어서 그때의 감정을 담고자 했다. ② 「Bagatelle」은 글렌 굴드의 「Beethoven Bagatelle op.126 no.3」의 삶을 초월한 듯한 연주에 감동받아 연주되었다. ③ 「Laurel Wreath」는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곡으로, 한 생명이 이곳에서 보낸 소소한 일상을 기억하고 축복하는 내용이다. 이 음악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적혀 있다. (I held in to the arms of eternity in joy/ being shrouded in brilliance and the light / Hand me the golden laurel wreath, I shed tear of joy/ Shining Celestials take me with sacred blessing; 나는 찬란함과 빛에 싸여 기쁨에 겨워 영원의 품에 안겼다./ 황금 월계관을 나에게 건네주오.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빛나는 천체들이여 신성한 축복으로 나를 거두어 주오.) ④ 「Lux Aeterna」는 더 히치하이커와 포프 엑스 포프에서 함께 했던 음악적 동료 Holy Son(이상우)의 작품이다.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태양」을 보고,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곡을 만들어 보자는 말에 그의 동료가 지은 곡이라고 한다. ⑤ 「Dans ce jardin qu’on aimait」는 파스칼 키냐르가 지은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에서 명칭을 가져온 음악이다. 이 책과 함께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⑥ 「Vers La Flamme」는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더 스크랴빈의 피아노 작품인 「불꽃을 향하여」와 만난다. 그의 여정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의 끝을 따라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곡에는 화가 고흐가 언급한 구절이 삽입되기도 했다. (I saw death in the wheatfield but Im not mournful of this sanctity Since It is the death of the golden sun shines on brilliantly; 나는 밀밭에서 죽음을 보았지만 이 신성함에 애통해하지 않는다. 황금빛 태양이 찬란하게 비추는 죽음이기 때문에) ⑦ 「To the Beyond」(A Clean, Well-Lighted Place)는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을 자신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 같다. 김환욱은 특히, 「Vers La Flamme」와 「To the Beyond」(저편을 향하여)에서 평온함과 위로를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⑧ 「SPRITUS LUMINIS」는 아우라(「Aurora」)의 다른 버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창작 노트를 반영하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로 작품을 환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창작자의 의도를 참고 삼아 의도와 해석의 지평을 풍부하게 하려는 태도이다. 또한 이러한 방법은 한 예술가를 깊이 있게 읽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4)  단테 알리기에리, 「33곡」, 『신곡—천국편』, 김운찬 옮김, 열린 책들, 2019, 291쪽. 

5) 반디 음악 광장 오늘의 책 에디터 추천 리뷰, 2011. 

    (https://blog.naver.com/bandinbook/60129664219) 

6) 이대희, 「웅장하거나, 세밀하거나, 혹은 화려하거나—[화제의 음반] 더 히치하이커, 아이언 앤드 와인, 루페 피아스코의 신보」, 201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35908#0DKU)

7) 나원영,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 15. 2010년대의 포스트록 (下)」, 2017. 

    (http://www.weiv.co.kr/archives/23437

8) 서정민갑, 「우리 안의 또 다른 세계를 위한 음악 길잡이」, 민중의 소리, 2015. 

    (http://www.vop.co.kr/A00000876696.html)

9) 김광섭, 「우리가 노래했던 은총과 영원―FIAT LUX <The Land of Light, The Land of Beyond> 에 부쳐」 ,『시사사』여름호, 한국문연, 2020, 92~94쪽. 

10) 박호은의 「FIAT LUX Logo 디자인 노트」 내용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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