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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Apr 19. 2021

전사

김사이  시인의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에 대한 단상

전사1)




흐르는 강물에 축구공 하나를 올려보자. 찰싹거리며 내려앉은 공은 요리조리 자신의 몸을 갸우뚱거리며 큰 저항 없이 흘러갈 것이다. 강물이 바짝 마르거나 이물질에 걸리지 않는 한, 공은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세상을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한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강물에 놓인 공처럼 흐물흐물 흘러가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공기와 비슷한 것으로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인 동시에 태어나자마자 들이마실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물질인 것이다. 이 힘을 의심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선택 권한이 없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신념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이데올로기가 부정적인 맥락에 놓이는 경우다. 누군가는 시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를 필요악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데올로기는 허상이자 상상의 존재일 뿐 실존하지 않는다. 항상 틈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것을 설명해 낼 수 없다. 


이데올로기는 틈을 가지고 있다. 이 작고 작은 틈을 가벼운 것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 작은 조각이 전체의 실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숨기고자 애쓰지만, 얼굴을 가라기엔 두 손이 너무나 작다. 틈에서 기생하는 존재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좀비의 습성을 닮았기에 이데올로기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좀비들은 벌어진 틈을 움켜잡고 찢는다. 이들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를 문제 삼음으로써 이데올로기를 바람직한 모습으로 건축한다. 


틈에 놓인 존재들은 더 이상 축구공을 흘러가게 놔두지 않는다. 강물의 흐름을 역행한다. 이 의지가 부족하다면 태양이 되어 강물 모두를 불태운다. 김사이 시인은 하나의 작은 태양이 되고자 한다. 그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고발하고, 좌•우로 힘차게 몸을 흔들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낳은 씨앗의 뿌리를 낫으로 잘라버린다. 



삶이 근육통 관절통으로 

삐거덕거리고 절룩거린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왜 아파야 하는지

이브가 여자로 기록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되었는지 몰라

여자의 노동은 속절없이 떠도는 뜬구름 같은 사랑일지도


사랑 없는 섹스 같은 앨리스의 노동

아버지나라에서 찬밥 남은 밥처럼 

먹을 수 있을 때 무조건 먹는 

성실한 날들


            「성실한 앨리스」 부분





엄마는 농약을 입에 넣으려 하고 나는 농약을 안 마시려 하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네 같이 죽자 같이 죽어 괴성 같은 울음에 몸부림을 그치니 그악스러운 엄마가 동백꽃 떨어지듯 툭 무너졌네 소가 울고 누렁이가 짖어대고 천둥이 발광하네 눈앞에 소이는 농약병보다 더 겁이 났던 것은 배고품과 추위였네 몰랐네 몰랐었어 퉁퉁 불은 젖이 슬픔으로 흘러 주저앉았다는 것을 여자와 엄마 그 사이에서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동시대에 살고 있는 반백의 딸이 여자와 엄마를 넘나들며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네


        「보온도시락통」 부분



시인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 우리 사회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의식‘화’하며 수정할 수 있다. 전통적 성역할(traditional gender roles)을 조장함으로써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한 문화를 교정할 수 있고, 남성 작가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문학사와 여성 등장인물을 성애화(eroticized)하려는 시선을 재조립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성(sex)과 젠더(gender)를 구분해 남성‘성’과 여성‘성’이 문화적 소산임을 확고히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글쓰기가 이중 구속(double bind)을 재현한다는 점과 자신 또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는 사실이다.2) 이를 통해 시인은 나를 극복하고 사회를 극복한다. ‘나’가 ‘대상’을 문제 삼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나’를 문제 삼고 ‘나’와 ‘사회’를 넘어선다. 



시인의 고백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진보적인 영역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이 고백들로 인해 우리들은 타자를 공감하고 또 다른 타자를 생각하며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전사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김사이 시인의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작정하고 “치욕의 첫 시작”(「도둑년」)을 시발점으로 지금, 이 순간의 치욕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그녀의 시집에 숨겨진 장점을 가둘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녀가 운용하는 언어 쓰임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언어는 가볍지만 가볍지 않고, 비어 있지만 꽉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진솔하고 담백하다. 자신의 언어를 뽐내지 않아서 화려하진 않지만 금강석처럼 단단하다. 그래서 반짝반짝 빛난다. 선배들의 멋진 시 운용을 적당히 빌려오지도 않았다. 거짓 없이 자신의 예술을 보여주었다. 이런 언어와 만날 때면 이상하게도 자꾸 몸이 기울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삶과 언어는 믿을 수밖에 없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 아닌 첫 번째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그녀의 시집을 읽다가 덜컹했던 두 편의 시를 잊을 수 없다. 동생과 싸우다 칼부림을 하던 지난날에 대해 쓴 「생각도 습관이 된다」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지만 도둑‘년’으로 내몰린 이야기를 담은 「도둑년」이 그것이다. 「도둑년」의 경우는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홀로 쭈그리고 앉아 읽다가 눈물을 참아야 했다. 덩치 큰 몸을 숨길 수 없어서 창피했지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

1) 김사이,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창작과 비평, 2018. 


2) 이 부분에서 빌려온 성애화(eroticized), 성역할(traditional gender roles), 성(sex)과 젠더(gender), 이중 구속(double bind)은 『비평 이론의 모든 것』에서 빌려왔음을 밝힌다. 로이스 타이슨, 「여성주의 비평」, 『비평 이론의 모든 것』, 윤동구 옮김, 앨피, 2012, 193~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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