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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Apr 19. 2021

Romanticist

양수덕 시인의 『유리 동물원』에 대한 단상

몽상가1)




양수덕 시인의 시집 『유리동물원』에 수록된 두 편의 시 「머나먼」과 「날아가는 집」은 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이 두 시편 이후 ‘연작시’2)가 배치되는 형식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이 시들이 품고 있는 내용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들에 대해 조금은 자세히 논할 필요가 있다.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나날이 지친다


내가 비명을 지를 때 네가 콧노래로 듣고 


네가 한숨 쉴 때 가벼운 바람으로 듣는 나


무채색, 무뇌의, 공간이 자라고 두꺼워지고 차가워지고 


사랑은 주머니가 채워지지 않는 거래


들어오면 나가고 나가다 다시 들어오기를 무수히, 얽힌 동선들만 어지러워 


허기가 져서 길어지는 뽀족해진 입으로


남은 생의 입질이 서툴다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머나먼」 전문 



이 시는 관계의 부딪침에 대해 논한다. 내가 비명을 지르면 당신은 비명을 듣지 못하고 콧노래를 부른다. 당신이 한숨을 쉬면 화자는 한숨을 쉬는 이유에 대해 헤아리지 못하고, 사소한 바람 정도로 여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다. 중요한 것은 부딪치는 상황이 유리벽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서로를 손쉽게 바라볼 수 있는 유리벽 사이에서 대화가 단절된다는 것은 역설적인 감정을 연출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시인이 바라본 세상은 소통이 원만하지 못하다. 극적인 것은 이러한 엇갈림이 사랑으로 번지고 이 흩어짐이 끝과 마주한다는 사실이다. 끝을 죽음으로 상정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통은 더욱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다음 생의 문안으로 사랑을 일 순위로”(「나는 한줄 월평이다」) 하고자 하는 바람은 그래서 더 아프다. 이러한 소통불가능성이 시집을 횡단하는 하나의 축이다. 


집이 있는 집이 없다 잎 넒은 오동나무를 옮겨 심은 것 같은 오동나무가 없다


집이라는 단어의 입천장이 까졌고 각진 포장은 어그러졌다 


또 얼마나 많은 격전을 치러야 명량한 주소를 브로치처럼 달까 


.

.

.

(중략)

.

.

.


지붕이 하늘의 나사를 빼고 날아가는 

창이 고전의 틀에서 빠지는 

육중한 현관문이 닫힌 가슴을 향하여 엎어지는

벽이 굳기름을 녹여 흘러내리는 

그런 집을 세우는 아침 마주 본다면 


집 날아간 빈 들판에 눈 뜬, 잎 넓은 오동나무 둘

서로가 서로의 둥근 잠에 깃들고 별빛을 따라갈 밤을 뒤진다면 


잘못 박힌 돌무덤

뼈아픈 그늘의 완성인 집은 있어도


                     「날아가는 집」  부분




이 시는 시인에게 있어서 시론적인 맥락에 놓인 시편으로 판단된다. 시인은 이 세계에서 새로운 ‘집’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존재하지 않는 집에 “명량한 주소”를 달아주려고 한다. 이러한 몸동작은 시를 완성하고자 하는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자주 본다면’, ‘―뒤진다면’이라는 구절을 이용해 자신의 시가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길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는 뿌듯하게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뼈아픈 그늘”만을 토대로 집을 지을 뿐이기 때문이다. 

『유리동물원』에서는 관계가 뒤틀린 상황이 주로 연출된다. 그래서 ‘―다면’의 포근한 세계는 그녀의 다음 시집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여하튼, “격전”을 치러가며 집 짓는 이 의지가 이 시집을 통과하는 둘째 요소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떤 방식으로 격전을 치를까. 나는 “피 튀는 전쟁터”(「유리동물원5」)에서 양수덕 시인이 ‘상상’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펼쳐 보인다고 생각한다. 죽을 사(死)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뛰어넘는 용감한 전사의 4”를 떠올리고, 아홉수가 아닌 “1프로의 허기를 채워야 할 희망의 9”(「유리동물원2」)를 상상3)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시인은 상상을 매개로 어떤 세상을 꾸며낼까. 보편적인 관성을 허물고 어떤 건축물을 세울까. 이러한 상상을 하며 그녀의 시집을 읽는다면 즐거움은 배가될 것이다. 유쾌하진 않겠지만, 상상 자체를 느껴보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임은 분명하다. 새로운 상상을 경험해보는 것, 이것이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


1) 양수덕, 『유리 동물원』, 천년의 시작, 2018. 


2) 시인마다 연작시를 쓰는 이유는 다르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을 연작시를 통해 부각시킬 가능성이 높다. 양수덕 시인은 8편(「유리동물원1~8」)의 연작시를 썼다. 


3) 가령, 이런 것들이다. 「오일펜스」에서 “검은 고혈을 먹어치우는 물고기에 대한 상상으로 눈 뜬 밤이 찾아오곤 했다”에서 ‘상상’이 언급된 구절이나, 「별의 자리」에서 “가공식품 같은 내 상상을 따라가다가 프로방스풍 카페로 들어간다”에서 확인되는 ‘상상’의 구절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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