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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Apr 17. 2022

현실과 마주한 신화



나해철 시인의 『물방울에서 신시까지』를 읽는 행위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신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신화는 무엇인가. 신화는 우리들에게 어떤 쓸모를 제공하는가. 신화에 대한 조셉 캠벨과 빌 모이어스의 대담을 담은 『THE POWER OF MYTH』에서 캠벨은 신화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첫째, 당신이 우주와 인간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순간, 신화는 당신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둘째, 과학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주를 재현한다. 셋째, 공동체 질서를 유지해 주는 사회적 기능이 존재한다. 넷째,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한다. 캠벨의 이러한 논리는 신화가 당대에도 여전히 유용한 텍스트임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는 기술과 기계는 물론 인식의 측면에서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포스트-휴먼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옛이야기보다 훨씬 먼 신화를 만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캠벨의 주장처럼 신화를 읽음으로써 이곳에서 풀리지 않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낡았다고 볼 수 없다. 신화는 이처럼 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앞에 놓인 귀중한 샘물이다. 그러니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신화’를 마음껏 펼쳐본 후, 미래를 점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의 내용은 신화학에 관한 논문이나 학술 보고서가 아닌 상상력에 의한 완전한 예술 창작”물임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 신화에서 창세신화가 풍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주, 바이칼의 게세르, 몽골 신화 등의 일부분을 빌려와 새롭게 꾸몄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이 시집은 연구서가 아니다. 신화의 틀로 ‘형식’을 밀고 나가고 있지만, 시인의 바람이 투영된 창작물이다. 그러니 형식(비유) 뒷면에 숨겨진 의미를 온전히 만져볼 필요가 있다. 그는 메타포(metaphor)를 통해 공동체의 ‘긍지’와 ‘부끄러움’과 ‘온기’를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인은 어떤 나침반이 되어 줄까. 이것을 탐닉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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