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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Apr 17. 2022

기이한 우리의 이야기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여러 명의 가수가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노래한다면 그 ‘곡’은 같은 곡일까. 아니면 다른 곡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동일한 곡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사와 리듬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세밀한 감정 표현이 현격히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같지 않다. 그렇다면 창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각각의 서로 다른 창작자가 동일한 ‘신화’ 모티브를 끌고 와 변주할 때, 어떤 방식으로 변용하고 새롭게 조립하느냐에 따라서, ‘신화’는 새로운 ‘신화’로 거듭나기도 하고 화석처럼 굳어지기도 한다. 뼈대에 기존과는 전혀 다른 언어가 달라붙기 때문이다. 이것을 반복의 힘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리듬의 효과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목해경의 『철가면』(2021)도 그런 ‘변주’를 방법론으로 활용한다.


이 책은 저자의 단편이 묶여 있는 것으로 표제작인 「철가면」, 「성지」, 「신발」, 「안녕, 홀리데이」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 한결 같이 잔잔하거나 포근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묵직한 표정이다. 그래서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영화관에서 찝찝함을 끌어안고 집으로 향하는 것처럼, 이 책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감정을 심어줄 것 같다.


독자들과 얼음 땡 놀이를 좋아하는 그는 당대의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극적인 이미지와 간결한 언어의 만남이 그것이다. 세로로 미끄러지는 ‘웹’ 매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에 수록된 그의 작품은 당장 웹툰에 연재되어도 손색이 없다. 그만큼 컷과 칸을 경제적으로 운영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의식적인 것이기 보다도 타고난 작가의 기질일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두 작품만을 이 지면에 소개한다. 「철가면」에서는 ‘금기’, ‘귀향’, ‘가면’, ‘폭력’ 등의 개념을 활용한다. 바닷가 근처에 사는 주인공은 “너무 작은 물고기는 다시 풀어”주어야 한다는 금기를 어기게 되고 그때부터 공동체인 집에서 쫓겨나 ‘집’을 평생토록 그리워한다. 끝내는 집 주변을 숙명처럼 배회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수많은 폭력으로부터 노출되는데 이것은 어쩌면 한 인간이 태어나 겪게 되는 희로애락의 과정을 담은 것일 수 있다. 「성지」는 제목 그대로 자신만의 ‘성지’에 대해 다룬다. 이 공간은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그’만의 공간이다. 그러니 허락 없이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 이것은 개별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마음 한편에 자신만의 성지를 갖고 있으니 성지를 지키려는 주인공의 간절함은 꽤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THE POWER OF MYTH』에서 신화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기능과, 삶에서 필요한 절박한 질문에 답해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변주된 목해경의 신화를 ‘지금, 이곳’의 현실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다소 이기하게 적혀있는 목해경의 『철가면』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언어가 아닌 만화적인 그림과 글로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질문하는 행위는 소중하다. 하지만 단편은 싱겁다. 언젠가 출간하게 될 그의 어두운(?), 또는 어린아이처럼 밝은(?) 장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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