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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03. 2021

강유환 시인의 「늦은 저녁에」







급작스레 멀리서 또 기별이 왔다

침팬지나 코끼리도 까마귀나 어치도 

동족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글을 읽고 있었다

올해만 해도 벌써 가슴 떨리는 네 번째 소식

태어남보다는 온통 떠나가는 것 일색이어서

오래 울리는 벨이나 떨리는 숨소리로 짐작하고도 

애써 다른 이야기로 에두르지만 결국 그 자리 

연 맺은 이들과 느루 속내 한번 못 나눴는데

다들 극단적 방식으로 근황을 기척해 온다

시위 주동자로 무기정학당해 졸업이 늦은 이는 

월급 털어 넣던 섬으로 출근하다 배가 뒤집혔고

누구보다도 좋은 시대를 꿈꾸며 살던 이는 

유서 한 장 없이 십오 층에서 낙하해 버렸다 

편한 잠 한번 안 자고 무료 봉사 일삼던 친구는 

단단히 뿌리내린 병의 숙주가 되었고

비정규직으로 맞짱 뜨며 강하게 살던 사촌은

퇴근길 자전거 앞쪽이 차에 받혀 즉사했다

아무리 이 바닥이 규칙 따윈 없다 해도

어찌 매번 이리 사이드로 몰래 들어오는가

어떤 코끼리들은 마지막 날 미리 알고

먼 동굴 홀로 찾아가 삶을 끝맺는다는데 

가름할 순간마저 얻지 못한 이들 위해

늦게나마 예 갖추어 작별하지만

반칙을 법칙으로 삼은 비겁한 승자는

판 엎으며 다시 이리 흔들 테고

전화벨 소리는 오래 울려댈 테고

고요히 동굴에 못 들어간 이들 불러내어

이렇게 울먹거리며 어깨를 들썩일 뿐

늦은 저녁 못 넘기고 가슴이나 칠 뿐  






  화자는 자신이 알고 지낸 지인들의 부고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프다. 무엇보다도 속내 한번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 생전에 용기를 조금이라도 냈더라면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하다.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서 늦음 밤 이들의 죽음을 생각하며 가슴을 친다. “어떤 코끼리들은 마지막 날 미리 알고/ 먼 동굴 홀로 찾아가 삶을 끝맺는다는데” 그들은 이런 여유도 없이 급하게 떠났다. 화자에게 그들은 야속한 사람이다.  


   기별(奇別) 소식을 전해온 친구들은 하나같이 멋진 동료들이었기에 아픔은 배가 된다. 한 친구는 시위 주동자였다. 시위하며 부조리한 체제에 맞선 인물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좋은 시대를 꿈꾸며 살았다. 비옥하지 못한 이곳에서 더 나은 세상을 쳐다봤다. 잠을 자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에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던 친구도 있었다. 비정규직이더라도 험난한 세상과 맞서 당당히 살아가는 친구도 있다. 화자의 친구들은 이처럼 다들 자신의 위치에서 양심 있게 세상을 살았던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끝은 너무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화자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죽음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모질게 다가오는가. 친구들이 무엇을 잘못했었기에 이리도 거칠게 하늘은 그들을 데리고 가는가. 


   화자의 슬픔과 분노는 자연스럽게 “반칙을 법칙으로 삼은 비겁한 승자”에게로 향한다. 정직하게 삶을 살았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아니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불공평하다. 신은 우리 주변에 있기는 한 것일까. 전지전능한 신이 미워진다. 어떻게 보면 화자의 친구들은 대부분 낮은 위치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비정규직자였고 시위 주동자였고 연민의 감정이 발동해 봉사활동을 하는 선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들의 바람은 이곳에서 이뤄지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졌다. 시인이 친구들의 죽음을 경유해 사회의 부조리를 문제 삼았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죽음의 방식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조심스럽게 찾아간 상갓집에서 한 시인의 어머니가 편히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는 경험에 대해 알 방법은 없지만 각자의 죽음이 “즉사”나 “극단적”인 방식이 아닌 느린 방식의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봄날에 읽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픈 강유환의 시다.



*

강유환 시인: 전남 무안 출생. 전남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2000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 시집 『꽃, 흰빛 입들』 논저 『존재, 그 황홀한 부패』, 『매혹과 크레바스의 형식』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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