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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04. 2021

조시현 시인의 「문」


* 조시현, 「문」, 『창작과 비평사』 190호, 창작과 비평, 2020, 119~121쪽.



* 조시현 시인: 2018년 『실천문학』 신인상 소설 부분, 2019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 





박사는 어딜 가나 배양접시를 지참한다 접시 안에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곰팡이가 자라고 있다 일정 이상의 크기가 되면 현실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박사의 마음에서 발견된 것이다 군집이 충분히 커질 때까지 박사는 기다린다 아직 멀었다 천장이 낮으면 모든 것이 옆으로만 자라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자꾸 뚱뚱해지는군 고개를 젖힌 박사가 도넛을 씹으며 생각한다 아직 어렸을 때 박사의 어머니는 천장이 높은 집에서 자라야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된다고 말한 적 있다 박사는 키가 크지 않고 마음에서는 곰팡이가 자란다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자라는 곰팡이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성기가 떠오르고 성기가 떠오를 때마다 문이 연상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박사는 거기를 누군가가 열고 나올 것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어릴 적 어머니는 머리맡에 앉아 밤마다 벽장문을 열고 나오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안심할 수 없었다 박사는 다리 사이에 힘을 주느라 불면증에 걸렸다 페니실린은 곰팡이로 만든다 문은 문을 해결할 수 있다 먼저 열고 나갈 것이다     


 아직 십대였을 때의 어느 밤 박사는 이불을 덮어쓰고 엎드렸다 막 문이 열리려는 순간이었고 공포심을 극복하기 직전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문을 열었고 천장을 향해 높이 들린 채 경련하는 박사의 궁둥이를 보았다 박사는 쫓겨났다 박사는 추위에 떨며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가족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과일을 먹으며 낄낄거렸다 얘야 이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지? 너는 착한 애잖니 천장이 낮아서 그랬니? 왜 그랬는지 말을 해봐라……    


 곰팡이가 자라고 있다     


 주치의는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마음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이대로 가면 당신이 먼저 문이 되고 말 거예요 하지만 눈물 나는 밤이 많은 걸요 말하고 나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대책 없이 문이 돼버리기 전에 박사는 사람들에게 연구를 알리기로 결심했다 저명인사들이 박사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게 바로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어요! 박사는 배양접시를 높이 들어올려 자신의 곰팡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누군가가 외쳤다 저런 걸 보이느니 이 차원에서 죽겠어요! 수치도 없군요!    


 박사는 눈에 힘을 주며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문은 닫는 즉시 열렸다 닫았다 열렸다 막 울음을 터트리려는 붉은 얼굴이 틈새로 드러났다 다시 닫았다 다시 열렸다 당혹스러움이 섞인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박사는 더 세게 닫았다 문은 아까와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다시 열렸다 사람들은 더 크게 웃었고 웃다 못해 서로의 몸을 때렸고 때리다 못해 눈물을 흘렸다 이게 바로 멸망이군! 세상이 습기로 가득했다 박사는 다시 한번 문을 닫았다 제발…… 그러나 결국 문은 열렸다 곰팡내가 났다 사람들은 계속 웃었다 닫을 수 없는 사람…… 닫을 수 없는 사람…… 천장이 높아 소리가 크게 울렸다 쾅 끼익 쾅 끼익 쾅 끼익 하하하하     


 박사가 오줌을 쌌다 그러자     


 코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사노 데꼬데 오오꾸리시마스   

 

 몸이 

 흩어지고 있었다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하나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히 말해 마음속에 살고 있는 곰팡이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이라는 장소에서 서식하는 곰팡이는 어렵지 않게 마음과 어울리니 우리는 이 두 요소가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래서 이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자 우리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인가. 화자는 그것을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이로운 것과 만나니 무엇인가 굉장한 것을 우리들에게 가져다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새로운 정서는 없다. 버석거림이 있을 뿐이다. 이 곰팡이는 “벽장문을 열고 나오는 괴물”의 모습을 닮았다. 흥미로운 기대보다는 곰팡내가 짙게 난다. 


화자는 그래서 주치의를 찾아갔나 보다. 주치의에게 자신의 몸 상태를 물어보며 주변 여건에 따라 마음껏 변주하는 이 물질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주치의는 고민 없이 해결책과 대안책을 마련해 준다. 혹여나 당신이 문 자체가 되어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마음을” 간직하라고 말이다. 곰팡이를 더는 성장시키지 말라는 말로 들리지만 잘 지켜야 한다는 당부로도 들린다. 이러한 우려와 기대 때문일까. 눈물의 눈물을 흘리며 화자는 결정한다.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인 곰팡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말이다. 


괴물의 모습을 닮은 그것을 보았을 때, 사람의 반응은 어떠할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떠난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빈 공터에 홀로 앉아 담배 피우는 화자가 떠오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시인은 소변보는 행위와 자위행위(?)를 통해 표현했다. 재미있는 시이다. 자신의 시론(?)을 이렇게 길고 재미있게 적는 것도 시인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탄생 서사를 소변보는 행위로 표현하다니. 여기서 내가 ‘재미’라고 표현한 것은 화자의 마음을 곰팡이로 비유한 것과 이것을 지켜보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어머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신 덕분에 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일본 방송 감사의 말―“코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사노 데꼬데 오오꾸리시마스”(この番組はご覧のスポンサーの提供で送りします)―을 빌려온 것은 억양으로서의 위트(wit)를 선사한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는 듯도 한데, 소통하려는 모습이 익살스럽고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나’가 드러나는 형식의 변주일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소변이고 이물질이고 곰팡이인 그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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