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종필 Nov 05. 2022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우리의 자세

웹툰 〈내일〉에 대한 단상 



마 작가의 만화 <내일>(2017~)을 읽는 행위는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를 응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가는 2017년 5월 20일 네이버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오늘까지 꾸준히 사회적 약자를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진정한 작가 중에 한 부류는 누군가를 위해 대신 울어 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라마 작가는 매우 충실히 이 작업을 이행해 나가고 있다. 실제로 한 명의 독자로서 웹툰을 읽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했으니 누군가는 어두운 자취방에서, 지하철 벽에 기댄 채, 버스 안에서, 거리를 산책하면서, 스마트폰 속 웹툰을 넘기며 짠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엇보다도 라마 작가는 동시대에 자주 호명되고 있는 반려동물, 퀴어, 성폭행, 무차별적인 악플, 학폭, 외모, 임산부, 성노동, 독고 노인 등의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전쟁 당시 목숨 걸고 싸웠던 젊은 청춘들까지, 기본 틀을 유지한 채 세대를 넘나들며 시즌 드라마처럼 소재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래서 많은 팬들은 라마 작가가 어떤 소재를 들고 나올지 시즌이 끝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기다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 소외된 약자가 너무 많으니 라마 작가가 지치지 않은 한, 이 작품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다. 즉, 웹툰의 형식으로 이곳의 소외된 모든 타자들을 라마 작가가 언급해 주었으면 좋겠다.


엇보다도 <내일>을 읽은 독자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타자에 대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경험하게 된다. 라마 작가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방식이든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께서는 융통성 있게 이 웹툰을 교과서로 활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당대의 부조리를 잘 재현해 내고 있다.




렇다고 해서 이 웹툰이 내용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소외된 존재를 무작정 텍스트로 소환해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자 애쓰는 작품도 아니다. 부조리한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려 일어서지 못하는 존재를 저승사자가 찾아가 자살하지 않게 도움을 준다는 세계관이 반영된 신선하고 재미있는 만화 같은 만화다.


엇보다도 스크롤을 내리며 읽는 독자들의 경우, 영화적 연출로 인해 마치 영화관에 들어와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할 텐데, 이것은 모두 작가의 연출력 덕분이다.


 만화는 선과 악의 문제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단순화하기보다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이 지점이 특이하다. 누군가가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피해 입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잡기 위해 또다시 카메라를 설치해 가해자를 잡는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는 설정인 ‘들쥐떼들’ 편이 그 예가 될 듯하다. 라마 작가는 이러한 연출을 통해 이야기 형식으로 각자의 입장과 사연을 들려 준다. 동성애의 커밍아웃 편을 다룬 ‘하늘에서’ 편도 마찬가지다. 내리는 비를 함께 맞으며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니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이 웹툰에 몰입된다.

무엇보다도 이 만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백’의 지점이 인상적이다.


<내일>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말할 수 없는 사연을 갖고 있다. 스토리를 리드해 가는 저승사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두렵고 무서워 처음엔 하나같이 자신의 사연을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작가는 ‘저승사자’라는 인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장자리에 놓인 타자를 고백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내일>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렇다면 고백 자체는 무엇인가. 고백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고백하기 힘든 것을 고백하는 형식일 테다. 고백하기 어려운 것을 고백한다는 측면에서 이 고백을 듣는 독자 또한 조심스럽게 귀를 열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인류는 루소가 신부가 아니라 세상에 죄를 고백했기 때문에 그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1)라고 말이다. 이처럼 고백의 힘은 막강하다.


백도 고백 나름의 힘이 있지만, 이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연출된 고백의 ‘장면’ 일 테다. 라마 작가의 작품은 검은색 계열 톤과 BGM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하얀 고백의 언어를 빛나게 한다.



지만 아쉬운 지점이 없지 않다. 라마 작가의 이러한 스타일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필요한 목소리임에는 부정할 수 없지만, 지나치게 옳은 것만을 지향하는 것 같다. 즉, 소재가 예측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가해자의 가해자를 다룬 ‘들쥐떼들’ 편이나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다룬 저승사자 임룡구의 사연이 녹아져 들어간 ‘서쪽 하늘’ 편은 인상적이었으나 라마 작가의 웹툰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 있었다. 좀 더 어려운 소재를 주제로 삼았으면 라마 작가의 뛰어난 연출력이 보다 화려하게 펼쳐졌을 것 같은데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가령,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역설적인 소재는 어떠한가. 그러나 <내일>을 읽으며 배운 점이 적지 않다. 독자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1) 오스카 와일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함」,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강정이 옮김, 2020, 18쪽.

작가의 이전글 아가미 없는 물고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