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대기>(2019)와 <제철동 사람들>(2022)을 그린 이종철의 만화를 읽는 행위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 노동의 현장을 응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가 노동 현장 안에서 먹고 자고 숨 쉬며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니 그렇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사건과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르포(reportage)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르포는 아니다. 르포는 지나친 목적의식으로 인해 진지한 측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지만, 이종철의 만화는 풍경 밖에서 바라본 시선이 아닌 내부에서 삶 자체를 구현해 내고 있기 때문에 미세한 결을 품는다. 그래서 르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따뜻하면서도 잔잔한 살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택배 까대기의 삶을 그린 첫 책과 상주식당 단골인 포항제철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두 번째 책이 그렇다. 만화가는 이들의 삶을 타자가 아닌 삼촌이나 이모 또는 동료로서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만화가는 좋아하는 만화를 그릴 수 있어 행복하지만 스스로 이 행위를 당당히 여기지 못한다. 이 감정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지 않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상주식당을 운영하는 엄마 덕분에 만화가는 남들보다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친구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학창 시절 미술학원을 함께 다닌 수정은 아침 일찍 출근해 새벽에 퇴근한다. 그러니 창작은 그림의 떡이다.<까대기>, 39쪽.) 집안 형편이 어려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은하는 일찍 구미 공단에 취업해 주야간 교대 근무로 잠자기 바쁘다. 은하는 만화가에게 “좋겠다. 하고 싶은 것도 하고.”(257쪽.)라고 말하게 되는데 그때 만화가는 은하의 몫까지 열심히 그리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잠시 쉬고 싶거나 그만두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형편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형편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종철의 만화가 대상을 장악하기보다는 '되기'의 방식으로 호흡하는 것은 이런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이것은 특유의 실존적인 장점이다.
그의 신간 <제철동 사람들>이 출간되었으니 줄거리를 짧게 소개해 보도록 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먹고살기 위해 공단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단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유한 사연을 품는다. 이들은 힘겨운 삶을 꿋꿋이 견딘다. 무기력하게 쓰러지지 않는다.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정과 의리로 똘똘 뭉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상주식당'을 매개로 모여든 여성들의 삶이다.
이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들은 서로를 챙겨주며 부족한 환경 속에서 정말로 잘 살아낸다. 엄마 순이도 동생 별이도 남편 대신 노가다 일하는 숙모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방에서 일해야 했던 주연이도 “학교 아이들의 엄마부터 등이 굽은 채로 태어난 이모, 고아로 절에서 자란 이모, 조선족 이모”(90쪽.)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상주식당에서 일하며 제철 노동자들에게 밥 지어주며 슬기롭게 삶을 살아간다.
만화가는 이처럼 한국현대사에서 중요한 시기인 산업화 시절을 만화의 형식으로 박제해 놓았다. 따라서 책에 그려진 인물은 개별적인 존재일 수 있으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내 이야기로 읽힌다. 자연스럽게 '나'가 바이러스처럼 번져 '우리'에 와닿는다. 그는 “우리 이야기는 만화가 된다.”(275쪽.)라고 말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만화가는 작품으로 증명했다. 그렇다면 후속 작품에서 어떤 작품을 들고나올까. 상상할수록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