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종종 후회와 직면한다. 이러한 감정이 자의적일 수 있고 타의적일 수도 있지만 어떤 방식이든지 후회는 당신을 그 순간에 가둔다. 그래서 당신은 수많은 결을 셈하며 잠시나마 그때의 표정을 만끽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그곳에 머무를 수 없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 흡사하니 그렇다. 흐르고 흘러 닿을 수 없는 바다까지 번진다. 누군가는 언어로 붓으로 영상으로 순간의 아름다움을 쟁취해 보겠지만, 이 흔적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지는 못한다. 애를 쓰면 쓸수록 왜곡되고 굴절된다. 이런 표정을 누군가는 예술이라고 말하겠지만 상상 속에서나 잠시 움켜잡을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힘들다. 후회가 후회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닿고자 하는 바람이 벽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2022년 초에 출간된 임성민의 『Point Zero(다시 돌아오는 곳)』도 이런 후회에 대해 다룬다.
이 텍스트의 주인공 이정우는 만화를 그리는 스물한 살의 젊은 청년이다. 아직 첫 책을 출판하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유학을 생각할 정도로 큰 꿈을 품고 있다. 하지만 정작 꿈을 찾아 떠난 유학길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동경하는 유럽 만화를 배우고, 그런 만화를 그리는 멋진 지망생들”(90쪽)과 어울리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국의 입시 미술학원”(112쪽)에서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것을 습득하는 것에 그쳤다. 그래서 정우는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한다. 남들은 꿈도 못 꾸는 프랑스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사랑했던 애인과 이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행위 자체와 썸이든 소개이든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자명한 진리다. 사랑을 잃고 텅 빈 가슴에 무엇인가를 채워야 했을까. 이 경험은 정우의 삶과 창작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고, 소중한 순간을 세게 움켜잡는다.
『Point Zero(다시 돌아오는 곳)』에서 정우는 꿈꾸는 만화가이기에 텍스트 여러 곳에서 좋은 만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이 지점은 실제로 만화가를 꿈꾸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동시대 예술가들이 함께 읽어봐도 무방하다. 즉, 그에게 좋은 만화란 “칸의 크기, 형태, 칸 사이의 거리, 칸의 개수와 배치를 통해서 이야기에 긴장을 주고 또 이완”(234쪽)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의 단면을 하나씩 그려 모아 앨범 속에 나열하는 과정”(234쪽)이기도 하다. 이처럼 만화가는 타인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애쓴다. 이 맥락에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표현”(214쪽) 해야 한다는 입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애쓰다 보면 보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당신을 담아낼 수 있으니 그렇다. 만화가의 이러한 애정은 역으로 삶과도 밀접하게 만난다. 삶이야말로 그렇지 않은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나’를 온전히 응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의미를 찾기 위해 주변을 배회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애정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수채화를 지향하는 임성민은 이처럼 보편적인 정서와 평범한 이야기로 평범을 넘어서고자 한다.
임성민의 『Point Zero(다시 돌아오는 곳)』는 만화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스며 있어서 흥미롭다. 그는 만화계가 웹툰으로 경사되고 있는 분위기에 종이책 만화가 왜 필요한지를 작품으로 증명한 소수의 젊은 만화가다. 가을에 읽으면 더 좋은 임성민의 만화를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