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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Feb 08. 2023

휴교령이 떨어진 ‘울산’이란?

[문종필의 오늘 만화] 13화

2023년 2월 26일이다. 인천에 있는 화도진 도서관에서 이원석 시인의 『엔딩과 랜딩』(2022)을 읽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잠시 쉬고 있다. 최근에는 글을 쓰지 못하다가 일기처럼 써 내려가니 무엇인가 마음이 후련해진다. 


요즘은 세미나에 아르바이트에 학교 수업 준비까지 온전히 쉬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복잡한 심정으로 혼란스럽다가 가방에 구겨 넣은 만화책을 읽으니 조금은 차분해진다. 왜 그럴까. 지난달까지 [문종필의 오늘 만화]를 인천일보에 연재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당시, 선별된 만화를 200자 원고지 10매에 소개했다. 이 작업은 매우 의식적으로 잘 쓰기 위해 애썼는데, 이런 과정이 나 자신을 답답하게 한 것 같다. 틀과 규격은 이처럼 숨 쉬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정해진 지면이 없으니 마음 편히 마음껏 이렇게 흘려 쓰게 된다. 청탁은 나를 늘 긴장시켜 왔는데, 긴장이 사라지니 더 좋은 글이 나올 듯하다. 청탁의 긴장과 내적 긴장은 다른 것이니까. 그래서 당분간 자유로운 형식으로 [문종필의 오늘 만화]를 이어 나가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이 방법이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런 형식이 ‘나’를 쉴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물론, 늘 항상 쉬고 있었지만, 여기서 쉰다는 것은 ‘온전히’ 쉬는 것이겠다.





아무튼


쩡찌의 만화 『폰콜』(2021)을 읽는다. 울산의 풍경을 담는다. 나의 경우 ‘울산’을 발화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수 강백수의 노래(〈울산〉)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에도 이 노래를 듣고 일어났다. 어쩌면 나의 모닝콜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노래를 모닝콜로 설정해 놓기에는 다소 난감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가. 가사를 잠시 탐닉해 보자. 이 노래 가사는 강백수 자신의 엄마 고향에 대한 노래로, 돌아가신 엄마와 그로 인해 외가 친척들이 강백수와 멀어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감정과 울산에서 거주하는 외가 친척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뭉클한 사연이다. 이 노래 가사처럼 외가도 친가도 ‘나’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멀어짐’은 일부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와 물리적인 먼 거리로 인해 서서히, 자연스럽게 잊히는 그런 마음이겠다.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외삼촌의 말이다. 



                             "엄마 없다고 외갓집을 잊고 살면 안 된다 틈 날 때마다 울산에 오니라"



그런데 쩡찌의 만화는 이 노래와 상관이 없다. 


어느 지역이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소와 공간은 기록되기 때문이다. ‘장소’는 정해진 개념이 아닌 창조적으로 만들어지는 표정이다. 주어져 있지만 특정한 개인이 품은 사연으로 인해 늘 항상 달라진다. 


이 만화의 주인공 ‘고은’은 “복잡하고 미묘한 내•외면을 가진”(82) 소녀다. 소녀는 학창 시절 이 즐겁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것이 괴로웠는지 전화 온 척을 하면서 엄마와 친구들을 따돌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척’을 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외면하는 소녀의 태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전화 받는 척하면서 한두 번은 특정한 상황을 외면하려고 한 적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심리, 이 감정을 만화가 쩡찌는 담아낸다. 하지만 이 감정이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는 날, 고은은 더 이상 가짜 전화를 들지 않는다. 


그렇다. 하늘에서 눈이 오는 날 소녀(고은)는 집에 홀로 쉬게 된다. 무엇인가 짠한 대목으로 느껴지는데, 이 지점이 울산 지역의 표정을 온전히 담아내는 순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울산은 눈이 귀한 대한민국의 여러 지역 중에 하나이니까. 그래서 이 표정이 지역의 표정이니까. 다음의 인용문은 그러한 사실을 잘 반영해 준다.




"눈이 엄청나게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마비가 되고 길은 질척질척 미끈미끈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서 휴교령이 떨어졌다."




홀로 남겨진 소녀는 펼쳐지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글에서는 그 ‘순간’을 담아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쩡찌의 만화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그는 칸과 칸 사이의 호흡을 넓게 잡는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주지 않는다. 동시에 이러한 특징과 맞물려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를 정제된 형태로 잘 펼쳐낸다. 만화가가 문창과를 전공한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을까. 응축된 감정을 잘 연출하는 것 같다. 


이 만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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