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휴교령이 떨어진 ‘울산’이란?

[문종필의 오늘 만화] 13화

by 문종필

2023년 2월 26일이다. 인천에 있는 화도진 도서관에서 이원석 시인의 『엔딩과 랜딩』(2022)을 읽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잠시 쉬고 있다. 최근에는 글을 쓰지 못하다가 일기처럼 써 내려가니 무엇인가 마음이 후련해진다.


요즘은 세미나에 아르바이트에 학교 수업 준비까지 온전히 쉬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복잡한 심정으로 혼란스럽다가 가방에 구겨 넣은 만화책을 읽으니 조금은 차분해진다. 왜 그럴까. 지난달까지 [문종필의 오늘 만화]를 인천일보에 연재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당시, 선별된 만화를 200자 원고지 10매에 소개했다. 이 작업은 매우 의식적으로 잘 쓰기 위해 애썼는데, 이런 과정이 나 자신을 답답하게 한 것 같다. 틀과 규격은 이처럼 숨 쉬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정해진 지면이 없으니 마음 편히 마음껏 이렇게 흘려 쓰게 된다. 청탁은 나를 늘 긴장시켜 왔는데, 긴장이 사라지니 더 좋은 글이 나올 듯하다. 청탁의 긴장과 내적 긴장은 다른 것이니까. 그래서 당분간 자유로운 형식으로 [문종필의 오늘 만화]를 이어 나가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이 방법이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런 형식이 ‘나’를 쉴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물론, 늘 항상 쉬고 있었지만, 여기서 쉰다는 것은 ‘온전히’ 쉬는 것이겠다.



9791191615036.jpg



아무튼


쩡찌의 만화 『폰콜』(2021)을 읽는다. 울산의 풍경을 담는다. 나의 경우 ‘울산’을 발화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수 강백수의 노래(〈울산〉)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에도 이 노래를 듣고 일어났다. 어쩌면 나의 모닝콜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노래를 모닝콜로 설정해 놓기에는 다소 난감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가. 가사를 잠시 탐닉해 보자. 이 노래 가사는 강백수 자신의 엄마 고향에 대한 노래로, 돌아가신 엄마와 그로 인해 외가 친척들이 강백수와 멀어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감정과 울산에서 거주하는 외가 친척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뭉클한 사연이다. 이 노래 가사처럼 외가도 친가도 ‘나’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멀어짐’은 일부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와 물리적인 먼 거리로 인해 서서히, 자연스럽게 잊히는 그런 마음이겠다.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외삼촌의 말이다.



"엄마 없다고 외갓집을 잊고 살면 안 된다 틈 날 때마다 울산에 오니라"



그런데 쩡찌의 만화는 이 노래와 상관이 없다.


어느 지역이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소와 공간은 기록되기 때문이다. ‘장소’는 정해진 개념이 아닌 창조적으로 만들어지는 표정이다. 주어져 있지만 특정한 개인이 품은 사연으로 인해 늘 항상 달라진다.


이 만화의 주인공 ‘고은’은 “복잡하고 미묘한 내•외면을 가진”(82) 소녀다. 소녀는 학창 시절 이 즐겁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것이 괴로웠는지 전화 온 척을 하면서 엄마와 친구들을 따돌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척’을 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외면하는 소녀의 태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전화 받는 척하면서 한두 번은 특정한 상황을 외면하려고 한 적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심리, 이 감정을 만화가 쩡찌는 담아낸다. 하지만 이 감정이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는 날, 고은은 더 이상 가짜 전화를 들지 않는다.


그렇다. 하늘에서 눈이 오는 날 소녀(고은)는 집에 홀로 쉬게 된다. 무엇인가 짠한 대목으로 느껴지는데, 이 지점이 울산 지역의 표정을 온전히 담아내는 순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울산은 눈이 귀한 대한민국의 여러 지역 중에 하나이니까. 그래서 이 표정이 지역의 표정이니까. 다음의 인용문은 그러한 사실을 잘 반영해 준다.




"눈이 엄청나게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마비가 되고 길은 질척질척 미끈미끈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서 휴교령이 떨어졌다."




홀로 남겨진 소녀는 펼쳐지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글에서는 그 ‘순간’을 담아 보고자 한다.




1.png


2.png


3.png


4.png


5.png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쩡찌의 만화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그는 칸과 칸 사이의 호흡을 넓게 잡는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주지 않는다. 동시에 이러한 특징과 맞물려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를 정제된 형태로 잘 펼쳐낸다. 만화가가 문창과를 전공한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을까. 응축된 감정을 잘 연출하는 것 같다.


이 만화 추천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웹툰 <앵무살수>에 대한 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