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종필 Mar 05. 2023

[지역의 사생활99]-다드래기의 만화 [스무고개]

나무처럼 머물러 있는 '공간'과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웃긴 건 슬퍼서 울면서 먹는데도 보리굴비는 그렇-게 맛있더라니까.(95쪽.) 


만화가 다드래기의 [지역의 사생활99] 시리즈 ‘화순’ 편은 자살한 엄마와 홀로 남겨진 딸과의 이야기를 다룬다. 엄마는 홀로 화순에 산다. 하지만 화순에 살게 된 계기가 자발적이지 않다. “아버지의 고향”이고 “아버지가 가고 싶어하니까” 그곳에 살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곳과 저곳을 많이 돌아다니는 딸 옆(광주에 살고 있는)에 있기 위해, 이곳(화순)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을 얻어 많이 아팠다. 병이 지독해서 버틸 수 없었나 보다. 자살을 결심한다. 딸에게 ‘화순’은 이처럼 아픈 공간이다. 그러니 딸은 이 공간을 편안하게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매번 용기 내 보지만 쉽게 허물어진다. 다드래기의 만화 『스무고개』는 이처럼 딸과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을 숨겨 놓는다. 


이 만화에서 지역이 운영되는 방식은 무한대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공간(너릿재)’과 ‘귀신’을 통해서 채워진다. 귀신이라고 하니 조금은 무서울 수 있으나, 『스무고개』에서 나오는 귀신들은 모두 가슴 아픈 사연이 있고, 한국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이 귀신들의 공통점은 모두 너릿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동학당, 민포군, 장돌뱅이, 탄광 노동자, 계엄군에 의해 사살된 학생 등이 그들이다. 독자들도 짐작하듯이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너릿재’는 한국현대사의 아픔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원통한 사연이 있는 귀신들은 아픔을 잊지 못해 이곳을 떠나지 못해 배회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 엄마도 마찬가지다. 너릿재가 있는 화순에서 죽었으니 이들 귀신과 함께 이야기하며 떠돌아다닌다. 이 과정에서 다른 귀신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같은 처지에 놓인 귀신들은 서로에게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사연을 물어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엄마의 딱한 사연을 듣게 된 귀신들은 도움을 주기로 결정한다. 물론, 실제적인 도움이라기보다도 촉매 역할에 가깝다. 엄마가 돌아가신 장소를 쳐다보지도, 마음에 두지도 못하는 딸에게 귀신들은 ‘화순’에서의 좋은 추억들을 마련해 주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귀신들은 화순의 좋은 장소들로 딸을 데리고 간다. 이 과정에서 지역 화순의 장소와 공간들이 펼쳐진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29), “서양정”(30), “무등산 둘레길”(48), “큰재”(51), “수만리”(51), “만연산”(51), “장불재”(51), “천주교 화순성당”(57)과 음식 “굴비정식”(54)이 그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장소로는 끝내는 가지 못했다. 그래서 딸이 선택한 방법은 “추억도 없지만, 나쁜 기억도”(65) 없는 ‘너릿재’로 향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추억을 쌓기로 결정한다. 끝내는 “또 와야지!”(76)라는 대사처럼 화순에 익숙해지기로 다짐한다. 이 과정은 돌아가신 엄마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 되기도 하겠다. 


지역의 사생활99 시리즈 『스무고개』 편은 변하지 않은 한 공간에 잠시 머물다 가야만 하는 여러 사람들의 사연을 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공간은 무한하지만 사람은 늘 구름처럼 변한다. 이 만화는 이런 흐름을 잡아냈다. ■

작가의 이전글 한 가족이 아닌 화교‘들’에 대해 주목한 만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