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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Feb 25. 2023

한 가족이 아닌 화교‘들’에 대해 주목한 만화

만화가 권용득의 『지란방만두』에 대한 서평


권용득의 『지란방만두』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이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이 만화가 고백의 형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물론, 고백이라고 했을 때, 온전히 날것 그대로 모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만화는 그런 성향을 지녔다. 그래서 읽은 내내 즐거웠다. 문학에 해당되는 시(詩)는 아니지만, 한 편의 시집을 읽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진지한 내용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권용득 특유의 유머와 익살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지역의 사생활99] 시리즈를 차례로 읽고 있는 지금, 작가들이 ‘지역’을 운영하는 방식이 조금은 아쉬웠는데, 권용득은 무엇인가 진지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고향 ‘왜관’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서 애정이 간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지란방만두’라는 제목 자체다. 나도 처음에 이 명사에 대해서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란방만두’는 “왜관에 화교 가족이 수십 년째 이어 가고 있는 만둣집”(18) 이름이다. 만화가 권용득은 왜관에 있는 맛 좋은 만둣집 한 곳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이다. 지역의 사생활 시리즈에서 이런 제목이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독자들은 ‘화교’가 운영하는 만둣집이라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화교(華僑)는 어떤 사람인가. 사전에 찾아보니 “외국에서 사는 중국 사람.”이라고 적혀있다. 한마디로 디아스포라다. 자신의 나라(고향)를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해 그곳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간편하게 말해 이민자들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 화교와 디아스포라가 낯설다면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1)를 떠올리면 이해가 조금은 더 쉽겠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만만치 않다. 만화가 권용득은 이 힘듦을 다음과 같이 적는다. 


한국 사회에서 화교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 국적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화교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실권을 거머쥐는 것을 경계했다. 외국인 토지소유금지법 등으로 화교의 재산권을 박탈하고 여러 권리를 제한했다. 그 무렵 그나마 형편이 괜찮았던 화교는 한국을 떠났고, 그렇지 못한 화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화교가 요식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74쪽.)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삶이 화교들의 삶이었다는 작가의 발언은 이들의 삶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떤 삶이든 쉽지 않다는 점에서 화교들의 삶이 특별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왜관의 풍경이라면 이 만화는 값지다. 그는 이런 말을 이어서 적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알던 왜관 사람은 대부분 왜관을 떠났다. 나의 부모 세대가 왜관을 지키고 있지만 그들의 고향도 왜관이 아니고 저마다 다르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왜관의 주인은 토박이가 아닌 외지인이다. 우여곡절 끝에 왜관에 불시착한 외지인이 그대로 눌러앉으면서 다음 세대로 이어졌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지금 왜관의 주인은 국적도 다양하다. 베트남, 태국,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 이주노동자들도 나의 부모 세대나 친구의 선배나 지란방만두 가게 가족처럼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을 떠나왔을 것이다. 훗날 왜관에 살게 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18쪽.)


권용득 만화가 스스로 자신의 만화 『지란방만두』가 ‘지역’에 초점을 맞춘 출판사의 취지에 어긋날 수도 있다고 적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지 않다. 진심으로 자신의 고향을 정성껏 잘 표현해 낸 것 같다. 어느 한 ‘화교’의 삶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화교 한 가족이 아닌 화교‘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으니 말이다.


48~49쪽.


이 만화의 주인공은 프리랜서 만화가다. 그는 만화를 도구로 보지 않는다. “만화도 엄연히 종합예술”(52)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편견은 여전하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대우도 조금은 아쉽다. 그런 그가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어떨까. 버겁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정 안에서 마냥 당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이의 운동화를 사줄지 말지 아내와 다투는 장면을 만화에 넣었던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런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상의 고민이 그를 부모님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인 ‘왜관’으로 향하게 만든다. 왜관에서 며칠 정도 쉬고 올라올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려간 왜관에선 마음이 편치 않다. “왜관에서도 딱히 갈 곳이 없었다.”(49). 그는 다시 집으로 향하고자 한다. “칠곡보에서 말 그대로 바람을 쐬다 뒤늦게 비어 있을 아내 작업실이 떠올랐다. 낯선 모텔방보다는 피곤해도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50) 생각하며 다시 서울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지란방만두’를 떠올린다. “아, 지란방 만두나 먹고 올 걸, 쩝….”(50). 


권용득의 만화를 읽으니 이제 곧 송아람의 장편 만화가 출간될 듯하다.(그는 송아람의 장편 만화 작업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고 아내 역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왠지 모르게 권용득의 장편 만화가 더 기다려진다. 그의 만화가 계속해서 그려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종합예술로써의 만화가 계속해서 출간되거나 웹툰의 형식으로 올라왔으면 좋겠다. 권용득의 만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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