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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05. 2023

만화가 오묘의 『녹음과 노을』에 대한 소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는다는 것


[지역의 사생활 99] 만화가 오묘의 『녹음과 노을』은 지역 ‘보성’의 흔적을 담는다.



이 만화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차다래, 이녹음, 이노을 세 명이다.


이들은 각자 사연이 있다. 먼저 차다래의 경우는 아빠가 없다. 그래서 다래의 엄마는 좋은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다래가 “새 아빠가 필요 없다”(51)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서울에서 선보러 다니며 짝을 찾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혼자서 다래를 키우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이 만화는 적고 있다. 가끔은 딸이 짐이 될 때도 있었으니 다래의 엄마는 보성에 있는 할머니 댁에 한 달 정도 맡기기로 한다. 그때 다래의 나이가 11살이다. 이곳에서 다래는 이 만화의 실제적인 주인공 ‘이녹음’을 만나게 된다.


이 녹음은 19살의 젊은 소녀다. 꽃다운 나이다. 그런데 이 꽃이 늘 항상 아름답게 서 있지 못한다. 힘겹게 흔들린다. 이녹음은 19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보호자도 남편도 없이 홀로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보호자분은 밖에 있나요? 잠깐 들어오셨으면 하는데, 왜요?



저 혼자예요



이 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녹음은 어린 나이에 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결국, 한 아이를 낳게 되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어려웠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인물 중에 하나로 등장한다. 바로 엄마의 성을 따른 이녹음의 딸 ‘이노을’이 그 인물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다래는 보성에서 지낸 1달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이모 녹음과 만났었고, 이모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당시에는 모두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해 낸다. 이 연출 기법을 탐닉하는 것이 만화가 오묘의 이야기를 탐닉하는 재미이기도 하겠다. 무엇보다도 보성에서 만났던 다래와 녹음은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의지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아빠가 없는 차다래의 엄마는, 이녹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합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던 녹음은 그날의 경험을 오래도록 품는다. 그러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다래가 “엄마 대신 갔던 친척의 결혼식”(11)에 오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이 두 명은 만나게 된다. 그때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밥 한끼 먹자는 약속을 하는데, 다래는 조금은 어색했는지 연락을 받지 않는다


그러던 찰나, 시간이 한참 흘러 다래는 갑작스럽게 녹음 언니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고, 그 장소에서 녹음 언니의 딸, 노을을 만나게 된다. 노을은 보성에서 지낸 엄마의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언제 보성 가자.”(18)라는 엄마를 말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언니 다래와 함께 보성을 다시 방문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보성이 그려진다. 보성역, 삼나무길, 녹차밭, 율포해수욕장 등이 그곳이다.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세 인물이 ‘보성’이라는 지역을 횡단하는 장면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분리해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뒤섞인 채 공간을 향유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이 만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일 것이다. 자신에게 무뚝뚝했던 엄마.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뒤늦게 가지고 온 엄마를 향해 “안 바쁜 엄마한테서 태어났음 좋았을 걸”(57)이라고 말하는 노을의 말에 “나도 너만 없었으면”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애틋한 사연이 ‘이노을’이라는 이름 하나에 담겨 연출되기 때문이다. 장편 평론을 쓰기 위한, 이 짧은 리뷰에 모든 연출을 이야기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아쉽지만, 이 부분은 시적이며 문학적이다.


독자분들도 만화가 오묘의 이 장면들을 탐닉하기 바란다. 앞서 말한 일품인 장면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보성에서 만난 두 인물. 11살 차이가 나는 다래와 임신한 19살 이녹음의 대화이다. “노을 최고네”라는 말은 어린 나이에 아빠가 없는 아이를 임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키우기로 다짐하겠다는 따뜻한 마음과 헌신이 느껴진다. 뭔가 애틋하다면서도 짠하다.




하늘 봐요! 와아. 되게 멋있는 황도 같다. 맛있는 황도라니. 비슷하지 않아요. 황도? 이상한가? 똑같은데. 비슷해. 나보다 낫다. 나는 ‘환타 같다’고 했어. 예쁘다. 환타 같아!! 환타? 아, 하늘! 그러네, 환타 색이네. 내가 젤 좋아하는 색이야. 음…. 그럼 해는 홍시 닮았어.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계란 노른자 같아. 노란색 풍선 같아. 봉숭아 물들인 손톱 색 같아. 감귤 주스 같아. 따뜻한 전구 불빛 같아. 호떡 같아. 행복 같아. 언니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몽땅 닮은 풍경. 좋다. 노을 최고네.(60~64)


그래서구나! 그래서 네 이름이 노을이구나!(64~65)



그렇다. 엄마 이녹음은 곧 태어날 아이에게 최고의 이름을 지어 주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녹음과 노을』을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만화가 오묘 역시 만나서 너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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