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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04. 2021

이윤설 시인의  「예약된 마지막 환자」에 대한 단상







나의 병은 주치의의 주특기, 삼십 년째 이 원인 모를 난치병을 

연구했고 당연히 국내 유일한 권위자로 성장했다. 

그에게 나는 오늘 혼이 났다.

먹어서는 안 될 사슴뿔 고아 짠 용을 

남몰래 복용했기에 

그의 예단대로 통증은 격심했고 

불면은 깨진 유리처럼 저항력을 손상시켰다.

두 손을 모아쥐고 머리를 조아리며,

의사의 말을 따르지 않는 환자는 치료할 수 없다는 극단의 처방을

거두시기를 앙망하느라 

내 눈자위가 떨잠처럼 으달달 떨렸다.     


차트를 갈겨쓰는 

창백한 흰 가운의 그는 

환자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법이 없다.

나는 소독된 햇빛이 비치는 책상 위

모형 범선을 보고 있었다.

펜을 멈추지 않은 채 그는 말했다.

제 의료 인생은 선원들과 함께한

험난한 항해와도 같았죠. 닻을 내리기 전까지 

무엇보다 선언들과 싸워야 합니다.    

  

휘날리는 필기가 끝나고 마침내 새 처방이 나왔다.

여명시에 깨어나 땀에 흠뻑 젖도록 일하고 

일몰시에는 가족과 함께 영양이 풍부한 저녁식사를 한 뒤

시를 읽다가 잠들어야 합니다.     


그건 좀 어려워요, 직업이나 식사 무엇 하나

규칙이긴 힘든데다 고독한 처지예요.

더구나 시는 읽을 줄 몰라요.     


건강을 돌보라는 

간단한 충고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군,

그는 깨진 유리처럼 인상을 쓰고

잠시 관자놀이를 짚었다.

간호사가 황급히 물잔과 알약을 대령하자

약을 털어 삼키는 동안

시꺼멓게 반달 진 그의 눈 밑이 엿보였다.  

   

자가면역질환은 우리 몸이 자신의 세포를 적으로

오인하고 스스로를 공격하여 생기는 통증이지요.

나는 환자들을 내 몸처럼 여겨요. 그런데 왜!

처음으로 마주친 그의 눈동자가 으달달 떨며

폭죽처럼 실핏줄이 터졌다.     


선생님, 통증이 심하신가요?

그는 두 손을 모아쥐고 간절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슴뿔 고아 짠 용을 복용하셨나요?

그는 그건 이미 십 년 전 일이라고 못박았다.  

   

나는, 여명시에 깨어나 땀에 흠뻑 젖도록 일하고

일몰시에는 가족과 함께 영양이 풍부한 저녁식사를 한 뒤

시를 읽다가 잠들어야 한다고 처방했다.     

 

그는 직업상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나는 내 말을 믿지 않는 환자는 진찰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떨구었고,

나는 간호사에게 외쳤다.

다음 환자!

그는 흰 가운에 청진기를 건 채 훌쩍이며 문을 열고 나갔다. 

간호사는 그가 예약된 마지막 환자였다고 말했다. 


                                            예약된 마지막 환자」 전문







주치의인 ‘그’와 환자인 ‘나’와의 관계를 다룬다. 의사의 역할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니 아픈 환자에게 처방전을 써 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처방전의 내용은 무엇일까. 처방전을 읽어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든든한 밥 한 끼 챙겨 먹는 것이다. 그리고 잠들기 전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선택해 읽으면 된다. 처방전 치고는 너무나 투명하다. ‘나’의 병은 단숨에 나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화자는 그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직업이나 식사 무엇 하나/ 규칙적이긴 힘들데다 고독한 처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시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니 주치의의 처방은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환자의 몸을 내 몸처럼 여기는 주치의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해 괴롭다. 아픔이 아픔을 낳았을까. 쓸모없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느꼈기 때문일까. 그는 병들기 시작한다. “폭죽처럼 실핏줄”이 터져 일어서지 못한다. 그때 치료될 수 없는 운명을 품은 ‘나’가 등장해 동정의 눈빛으로 동일한 처방전을 내민다. 당신은 “사슴뿔 고아 짠 용을 복용”하지 말 것.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할 것. 일을 끝마치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것.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시를 읽으며 잘 것. 아이러니한 것은 이 말을 들은 주치의도 ‘나’가 발언했던 것과 똑같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끝을 문다. 병든 주체가 반복되는 이 시는 화자가 품고 있는 병이 더 이상 낫지 않을 것임을 예견한다. 주치의도 환자도 결국은 동일한 ‘나’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 자가면역질환처럼. 병을 고치려는 ‘나’(주치의)의 모습마저도 병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통증이 끊기지 않는다. 화자는 이러한 회전 고리를 통해 ‘나’의 병이 오래도록 회복 불가능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시인의 운명일까. 병든 동료들을 생각한다. 故 이윤설 시인의 시(詩)다. 



이윤설예약된 마지막 환자」 전문 문학동네』 105, 2020, 266~268.

*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2020년 10월 10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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