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나면

행복하다.

by A K Moon

“호주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나면 행복하다.”


누군가에게는 꽤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이 말은 장애인들이 내게 직접 한 말이다. 물론 그들은 문장 서두에 “호주에서”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왜 그들이 행복한가에 대해서 길고 지루하게 설명하기보다 숫자로 설명하는 편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호주에는 2013년에 생긴 ndis (The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라는 것이 있다. 한마디로 펀딩이다. 2024년 펀딩금액이 44.3 billion이었다. 44.3 밀리언이 아니라 44.3 빌리언. 숫자에 약한 나는 한국돈으로 계산조차 안된다. 그러나 그 엄청난 금액을 나는 피부로 체험할 수 있었다. 내가 돌보던 어느 장애인에게 주어진 일 년 동안의 금액이 50만 달러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장애인이 그 50만 달러를 현찰로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장애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그 돈으로 집에 24시간 365일 와서 밥 해주고 청소해 주고 병원도 데려가고 산책도 시켜주는 스태프들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휠체어, 학습보조도구 등등 장애인용 기구들을 사는 것도 그 돈에서 지불한다. 그리고 또 예산이 남으면 내가 일하는 데이서비스 센터 같은 곳에 시간당 70, 80달러를 내고 다닌다.

데이서비스 센터는 나 같은 스태프들에게 임금을 주는데 그 임금이 바로 ndis 펀딩에서 나오는 금액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수십 명의 관리자들이 있고 ceo도 있지만 그 ceo나 내 매니저들이 내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 매니저들도 ceo도 모두 펀딩에서 급여를 받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회사를 다닐 때 받는 보통의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다. 나는 오로지 내가 돌보는 장애인들의 안전과 행복에만 신경 쓰면 된다. 수익창출을 위해 성과를 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오늘 캐시가, 제임스가, 워렌이 행복한가 아닌가 가 우리 스태프들 모두의 관심사일 뿐이다.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와 조금 차별점이 있다. 하루 일과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친다. 1958년에 정신지체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로 출발해서 지금의 규모로 성장했다. 50여년 전 어린이들이었던 장애인들은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되어 40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과 오늘도 함께 하루를 보낸다. 평균 직원들의 근무년수가 20여 년이 넘다보니 나 같은 햇병아리는 명함도 못 내민다. 과거에 장애인 자녀들 둔 부모들 중에 지역유지들이 꽤 있어서 땅과 건물들이 회사에 많이 기부되었다.


호주는 장애인이 18세가 되면 대부분 집으로부터 독립해 공동주택으로 들어간다. 정원이 딸린 문턱을 모두 없앤 1층짜리 단독주택이다. 방이 3, 4개 휠체어가 드나들어도 충분히 넓은 화장실이 두 개 이상, 스탭실 사무실과 24시간 상주이다 보니 스태프들이 자는 침실까지 갖춘 그런 주택이다. 그런 주택들은 따로 어딘가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네에 골고루 일반 주택과 똑같은 모양으로 섞여 있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모른다. 호주 모든 동네마다 장애인들의 공동주택이 있다고 보면 된다.


장애인들의 부모들은 가끔 자식들을 방문하러 공동주택에 들른다. 스태프들과 수다를 떨고 차도 마시고 같이 밥도 먹는다.

내가 만난 부모들은 항상 웃고 있었다. 스태프들 앞에서만 웃는 가식적인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한국 뉴스에 종종 나오는 장애인 자식을 돌보느라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처한 그런 부모의 고통은 그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문화충격이었는데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18세가 넘은 장애인 자식을 자기 집에서 데리고 같이 사는 부모도 일 년에 두어 번은 해외여행을 가느라 혹은 개인사정으로 자식들을 한 달이나 몇 주 혹은 며칠간 공동주택에 보낸다.

(18세 이하 장애인들에게도 복지제도가 있겠지만 그쪽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다)


장애인들에게 조성된 그 “돈”은 호주 국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돈이다. 나와 남편이 낸 세금이다.

호주는 세금요율이 꽤 높다. 사람들이 기꺼이 44.3 빌리언을 장애인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들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한다.

장애는 그 가정에게만 닥친 불행이니 그 가정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장애인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페어를 열고 장애인들과 함께 만든 물건도 판다.

장애인들의 창의력을 일깨우는 재능 있는 스텝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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