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살던 고향은 서울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혜화동 1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는 자리. 육십을 바라보는 꼰대들의 레퍼토리 ‘라테’ 타령을 원천 봉쇄하고픈 마음에서 일부러 내가 화두를 던지고 대화를 주도한다. 하지만 술잔이 몇 번 돌고 나면 벗들은 여지없이 자식 자랑, 돈 자랑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그 끝엔 으레 고향 이야기가 나온다. 


    “니들이 고향을 알아? 낭만 없는 것들! 자고로 고향이라는 건 말이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대동 단결한다. 이쯤 되면 서울이 고향인 ‘니들’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눈앞의 안주만 깨작거린다. 

    정말 그럴까? 서울에서 나서 한 번도 이 도성을 떠나본 적 없는 나는 그리워할 고향이 없을까? 최악의 황사가 서울을 덮친 날, 나는 ‘나의 살던 고향’을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첫 고향, 첫 동네 혜화동! 개발 논리가 군림한 서울에서, 내 기억 속 혜화동 한옥은 50년 세월을 버텨내고 있을까? 


    하지만 여덟 살에 떠나온 기억 속의 그곳은 너무 흐릿했다. 옛집을 묻는 내게 어머니는 핸드폰 스피커가 떠나갈 듯 외쳤었다. “혜화초등학교! 거기 정문 맞은편! 그리로 들어가! 거기 안쪽 골목 가운데 집이야!” 고향 가는 길, 첫걸음도 떼기 전인데 이미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대체 어딜 말씀하는 걸까? 


    아무튼 혜화동 로터리. 연극 연습을 하러 자주 지나던 곳이라 익숙했다. 하지만 혜화초등학교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자 묘하게도 자꾸만 긴장됐다. 나니아 연대기의 낡은 옷장 속을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던 루시처럼 혜화초등학교로 향했다. 거리가 단정하다. 정말 그랬다. 내 등 뒤로 건재한 거대도시의 풍경과 확연히 다르다.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정갈하게 뻗은 인도, 그 위로 쭉 펼쳐진 낮은 건물과 가게들. 마음이 살짝 놓였다. 압도적이지 않고,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공간, 휴먼 스케일이라는 것 때문인가 보다.


    어느새 긴장감은 사라지고 옛집을 단박에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혜화초등학교 앞에서

    혜화초등학교 정문 맞은편 길은 나를 아늑하게 안아주었다. 고만고만한 빌라들을 지나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여러 갈래 길로 나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눈을 감고 나의 느낌에 집중했다. 가만히 내 가슴이 이끄는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마음이 택한 길, 아니 아득한 옛 기억이 이끄는 대로 들어선 왼쪽 길. 


    눈을 떠보니 그곳엔  높다란 한옥이 있다. 서너 계단 위에 대문이 보였다. 마치 기적 같았다. 

    그때 그대로 있 었 다. 

    내 기억 속, 낡은 장식 못으로 한껏 치장된 대문이 오버랩되었다. 대문 양쪽으로는 하얀 타일로 덮인 벽이 집을 빙 둘렀다. 중간중간 ◇ 문양으로 박힌 파란색 타일들 덕분인지 무척 멋스러웠다. 어느새 상상 속 내 두 발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조막만 한 손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대문간에 들어섰다. (이어집니다.)


어, 여기! 기시감 정도가 아니라 딱 그것이란 느낌! 50년 전 그날을 되살려준 공간을 만났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오리 뿌릉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