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넓은 독서가 준 영감으로 쓴 숏컷 소설
주말 동안 뭔가 이룬 게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침실에서의 일들은 분명히 즐거웠고, 그녀는 전보다 브루스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다만 그녀는 섹스를 위해 또는 그가 말하는 소설을 쓰려고 그곳에 간 게 아니었다. 그녀는 증거를 수집하거나 범죄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 아주 많은 돈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사실상 얻어 낸 것이 별로 없었다.
민박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비키니로 갈아입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가 감탄할 만했다. 그녀는 그가 그녀의 몸을 두고 들려준 온갖 미사여구를 떠올렸다. 날씬하고 예쁘게 태운 몸을 유용하게 써먹었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했다. 그녀는 흰색 면 셔츠를 걸치고 샌들을 손에 들고 해변 쪽으로 긴 산책을 나갔다. <존 그리샴 저 / 하빌리스 출판>
'0326* 비번 바꿔 ㅅ 어 많이 느ㅈ 지는 안ㅎ너 엄마 카드로 마라타 ㅇㅇ ㅣ라도 시켜 머꾸'
엄마 집에 들어선 지 일곱 시간 하고도 오십오 분이 지났다.
싱크대 안에 먹다만 마라샹궈, 꿰바로우, 곱도리탕, 물회.. 시뻘건 잔해물로 너저분했다.
'설거지라도 해두면 좀 좋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엄마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아이고, 우리 딸 최고!' 다정을 가장한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말끔히 설거지를 했다.
마른행주를 찾으려 싱크대 아래 있는 서랍을 차례대로 열었다.
맨 아래 서랍에 뭔가 걸렸다.
!
벌어진 작은 틈으로 손을 비집어 넣었다.
서랍 안쪽에 걸린 뭔가를 끄집어냈다.
드르륵 서랍이 쉽게 열렸다.
칫솔, 남성용 화장품, 신사용 검정 양말, 트렁크 팬티, 하얀 런닝 셔츠가 그 안에 잘 개켜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 랩을 흥얼거리며 서랍을 닫았다.
'집이 최고야.' 홀아비 냄새 가득한 자기 집에 들어서면서 늘 이렇게 말했다.
"집이 최고지... 최고..." 신발을 벗어던지며 텅 빈 집 안을 향해 인사했다.
난 곧장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는 크림색 패브릭 소파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아빠처럼.
비릿한 냄새가 내 콧속에 희미하게 번지며 비위를 건드렸다.
소파에서 잽싸게 뛰어내렸다.
거실 조명 빛에 묘하게 명암을 바꾸는 소파 위의 얼룩을 '드디어' 찾았다.
소파 맞은편 책장에 숨겨둔 태블릿을 끄집어냈다.
소파가 배경인 삼일 치 녹화된 영상을 공들여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내가 엄마 집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는 아빠의 어른 놀이터로 변했으니까.
영상 속의 카스트라토 같은 신음의 주인공은 그때 그였다. 아빠의 후배라던...
띠띠띠띠
"집이 최고야! 그치?" 아빠는 구두를 벗으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럼!"
나의 환한 웃음은 아빠를 소파가 아닌 내가 앉은 식탁 앞으로 이끌었다.
"뭐 있어?" 아빠는 피시방에 앉아 막 게임창을 여는 중학교 남학생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없어. 암것두..." 빛나는 눈빛이 멍하게 흐려지는데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부르르르~~ 식탁 위 핸드폰 화면에 '임여사'가 떴다.
안타까움이 잔뜩 묻은 얼굴의 아빠를 모른 척하고 내 방문을 닫았다.
"아빠, 후배 계속 만나는 것 같지? 그 사람 있잖아? 집에 드나드는 거 맞지? 집에 왔다 간 증거가 나오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알았지?"
엄마에겐 내 대답 따윈 필요 없었다.
검색창을 열었다.
항공권 예약, 뉴욕, 키보드를 꾹꾹 눌렀다.
일등석을 클릭하고 항공권 검색을 꾹.
'천이백만 원... 얼마 안 하네.'
다음엔 뉴욕 호텔을 검색했다.
평점이 높은 호텔 순으로 설정했다.
더 휘트니 호텔, 더 세인트 레지스 뉴욕, 더 뉴욕 에디션...
뭔가 있어 보이는 호텔이 촤르르륵 눈앞에 펼쳐졌다.
그중 더 있어 보이는 더 머서를 클릭!
"일박에 백삼십?... 싸네~"
카톡을 열었다.
여전히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그 랩을 또 흥얼거렸다.
'임여사'에게 핸드폰에 저장된 서랍 안의 사진들을 보냈다.
'집이최고야'에겐 태블릿에서 다운로드한 그... 영상을 보냈다.
난 나를 위한 스파이가 되기로 했다.
건조기에서 교복을 꺼냈다.
교복에서 쿰쿰한 냄새가 올라왔다.
신발장 위에 놓인 섬유탈취제를 뿌렸다.
아기 냄새가 나는 향이 좋았다.
'부르르르', '집이최고야'였다.
핸드폰을 전원을 껐다.
핸드폰에서 비릿한 땀냄새가 났다.
섬유탈취제를 핸드폰 위에 마구 뿌렸다.
탈취제 액체가 핸드폰 화면을 타고 흥건하게 흘렀다.
아기 향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