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탈
하늘이가 가출을 했다.
사건은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났다. 우리 집은 아침 식사를 거창하게 하지 않는다. 그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과일 몇 가지로 간단히 배를 채운 후 오전 9시경,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둘째 달이를 등원시켰다.
편식하느라 전날 저녁밥을 아주아주 조금 먹은 하늘이는 아침 식사 양이 부족한지 밥을 달라고 했다.
하늘이는 김치를 너무 좋아하는 반면에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 전, 시부모님과 가진 첫 식사자리에서 김치와 매운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를 배려한 남편의 행동에 편견 없지만, 편견 있는 나의 시부께서는 나에게 혹시 외국인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을 정도로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나는 그날 아침 하늘이 생애 처음으로 김치볶음밥을 했고 워낙 김치를 좋아하는 하늘이라 김치볶음밥도 당연히 좋아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하늘이는 식탁 위에 올라간 김치볶음밥을 보고선 “나는 김치볶음밥이 싫어!”를 외치곤 눈물바람으로 가출을 행했다.
하늘이는 같은 아파트 3층에 거주하시는 할머니 집으로 곧잘 가출한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하늘이가 행하는 소소한 일탈이다.
그럴 때면 하늘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잔뜩 투정도 부리고, 꾸중도 듣고, 또 할머니 할아버지와 실컷 놀고, 간식도 맘껏 먹으며 기분이 풀어진 후에야 집으로 복귀를 한다.
그날 하늘이는 양손 가득 소고기를 들고서 복귀했다. 집에 온 하늘이는 이렇게 외쳤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소고기 구워줘!”
우리 집에는 라면이 없다. 라면 러버인 하늘이는 라면이 있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식사 대용으로 끓인 라면을, 간식 대용으로 생라면을 원하는 아이다.
그래서 라면이 먹고 싶고, 꼭 먹어야 하는 날이면 그냥 그때마다 집 앞 슈퍼에서 라면 몇 개를 사 오는 정도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완성된 반찬이 없다. 매 끼니때마다 소량씩 반찬을 바로 만들어서 해 먹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재료만 한가득이다.
당시 베이킹에 빠져있던 나는 매일같이 아이들 쿠키나 빵 종류의 간식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었다.
그러니 간식 만들 재료만 가득했을 뿐 우리 집에는 완성형의 간식은 거의 없었다.
그날도 하늘이는 집에 라면이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 집으로 가출을 행했다.
하늘이의 할머니이신 나의 시모께서는 이러한 우리 집 냉장고 사정을 잘 아시지만, 시부께서는 잘 모르신다.
일이 년 전, 그날. 3층에는 시부만 계셨다.
하늘이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 이렇게 재잘거렸다고 한다.
“할아버지.. 우리 집에는 (내가 바로) 먹을게 하나도 없어요. 냉장고에 (당장 내가 꺼내서 바로) 먹을 게 없어요. 우리 집에는 (나 때문에) 라면이 없어요.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요. (라면 먹고 싶은데 엄마가 라면 안 주고 밥을 줘서 밥을 안 먹었더니) 배고파요.”
무언가 많이 생략된 하늘이의 말에 단단히 오해를 하신 시부께서는 그날 당신의 냉장고를 탈탈 털어 우리 집으로 배달 오셨다.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속으로 ‘개이득!’을 외치고 시부께 큰 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시부께서는 혹시나 며느리 불편할까 봐 나한테는 어떠한 말씀도 못하시고 끙끙 앓다가 시모께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고 한다. 모든 사정을 잘 알고 계시는 시모께서는 박장대소를 하시며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하늘이는 3층 할머니 집에 있다. 역시나 소소한 일탈이다. 어린아이의 투정으로 익숙하게 웃으며 맞아주시는 시부모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하늘이가 집으로 내려올 때에는 또 양손 가득 무언가를 쥔 모습일 거다.
하늘이의 이 발칙하고도 깜찍한 일탈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