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널리 알려진 신조어가 있다. 사실 요즘이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이미 수년 된 용어이니. 바로 <맘충>이다. 14년 내가 첫 아이인 하늘이를 낳기 전부터도 익히 들어온 단어다. 나는 맘충은 나와 먼 단어인 줄 알았다. 맘충은 말 그대로 무개념인 보호자에게 향한 단어인 줄로만 알았다. 따라서 나는, 보호자인 나만 잘하면 나와는 상관없는 표현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은 하늘이가 태어나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접종 차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는 뚜벅이였고, 병원은 도보 20분 남짓하는 거리였기에 하늘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정말인지 하늘이는 내 콩깍지가 아니라 그냥 모든 감각에 무던한 아이였다. 접종 맞고도 우는 일이 흔지 않았다. 이 아이는 돌 전부터도 그랬다. 그 흔한 접종 열 또한 이 아이는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 우리 큰 아이는 그냥 잠만 자다가 밥 먹을 때가 되면 눈을 뜨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접종 직후 유모차를 탔으니 어땠겠는가. 내내 잠만 잤다. 덕분히 나는 집 가는 길에 있는 대형마트에 갈 수 있었다. 여전히 우리 아이는 유모차에 누워 잠을 잤다. 해산물 코너를 막 지나 육류 코너를 향할 때였다. 내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이는 여전히 꿈나라에 있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유모차에 누워 잠을 청하던 내 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나는 그날 맘충이라는 소리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다.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 나와 잠든 내 아이가 들은 말들과, 그날 받은 눈초리를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날 이후로 아이와 단 둘이 마트를 가지 못한다. 아직도.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 아이의 소리는 민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런 비난의 말과 비난의 손짓을 받을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하늘이가 두 돌은 되고서야 첫 외식을 시도했다. 그 전에도 외식한 적은 있었지만 시부모님도 동행했으며, 늘 시모께서는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너네 편하게 먹으라며 아이를 업고 밖을 나섰다. 그러니 온전히 외식 다운 외식을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백화점에 갔다가 들렀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나마 아이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은 샤브샤브 집이었다. 샤브샤브 집 맞은편에는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다. 하늘이는 감자튀김을 참 좋아했다.
처음 몇 분은 고맙게도 하늘이가 얌전히 있어줬다. 그러나 육수가 가득한 냄비가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이는 조금씩 칭얼거렸고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고민하기 시작됐다. ‘아 그냥 값을 지불하고 나갈까?’
고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음식들이 들어왔고, 남편 먼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아이를 안고 맞은편 패스트푸트점으로 향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이라도 주면 좀 나을까 싶어서.
아이를 품에 안고 감자튀김을 손에 들고 식당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남편은 이미 나의 몫을 남긴 후 식사를 끝낸 후였다. 감자튀김과 함께 아이를 남편 품에 안기고 나의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줄곧 재우던 아이라 아빠 품이 엄마 품 보다도 더 익숙한 아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허겁지겁 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모녀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애기 엄마. 천천히 먹어요. 애기 아빠도 들어오라고 해요. 괜찮아요.”
나는 모녀의 그 말과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그 아이는 올해로 8살이 되었다. 밑으로 4살 동생도 생겼다. 그 사이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하늘이 친구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애가 하늘이를 많이 보고 싶어 해. 간단하게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
남편이 곁에 있었더라면 작은 아이는 남편에게 맡겼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식사자리를 지루해할 우리 작은 아이를 위해 그 집에서도 조용한 놀잇감을 바리바리 챙겨 왔다. 그래도 고작 33개월 된 작은 아이는 그냥 어린아이 일 뿐이었나 보다.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둘째가 유튜브를 보다가 환호성을 질렀단다. 그래서 큰 아이 친구 엄마는 가게 사장님과 주변 테이블에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 테이블 손님들은 너무 고맙게도 “괜찮아요. 저희도 아이들 좋아해요. 아이들이 다 그렇죠. 저 정도 소리는 성인도 내요. 그러니 아이가 있다고 너무 눈치 보지 마세요. 안 그러셔도 돼요.”
뒤늦게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에게 너무 미안해서.
조금 이르게 식사를 끝냈다. 계산을 위해 카운터에 자리했을 때에 그 테이블 손님이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안녕?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그렇게 우리 아이와 스몰 톡을 주고받았다. “아 이제 초등학생이구나. 아 동생은 이제 4살이구나. 완전 애기네. 동생 많이 귀엽겠다. 우리는 저기 대학교에 다니는 삼촌들이야.” 그냥 아이와 주고받는 인사지만 나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려왔다.
‘괜찮아요. 그러니 아이가 있다고 너무 눈치 보지 마세요.’
그 쯤 결제를 마친 사장님께서 나에게 카드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식사는 제대로 하신 거예요? 아까 보니까 애기 엄마가 너무 신경 쓰던데. 그 정도는 괜찮아요. 너무 안 그래도 돼요. 애가 그 정도 말도 못 하나..”
나는 죄송하다고,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고 가게 문을 나섰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대학생들과 가게 사장님의 눈빛과 말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