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작품전
어젯밤, 운동을 갔다 돌아온 딸아이가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엄마, 아빠 온 세상이 하양하양해요. 너무 예쁘지요? 얼른 산책 다녀오세요. 눈 밟고 오셔요." 우리는 딸아이의 눈 사진에 반하고 또 딸의 따뜻한 말에 감동해서 서둘러 눈을 밟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온 세상이 하얀 도화지 같기도 하고 마치 구름밭 같기도 하였다. 우리는 발끝이 닿을 때마다 부서지는 눈의 속삭임을 들으며 조용히 눈 위를 걸었다. 하얗게 물들어 있는 세상은 너무나 청아하였다. 가로수는 은빛 옷을 걸쳤고, 마른 가지 위에는 눈꽃이 내려앉아 반짝였다. 바람조차 고요한 이 밤은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우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눈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의 모습이 마치 꼭 조각 작품 같았다.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한 마른 나뭇잎과 열매 위에 내려앉은 눈은 아름다운 꽃과 같았다. 하아얀 눈꽃이 만개한 듯 화려하고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자연이 피워낸 겨울꽃은 마치 정성스럽게 빚어진 예술품처럼 보였다.
이 위대한 광경에 반해 우리는 이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하지만 사진만으로는 이 감정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이 광경을 마음속에 새겼다. 어쩌면 이 밤은 그냥 지나쳐버리기엔 너무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아닐까.
눈이 내린 거리에서, 우리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때 자연과 문명의 하모니가 한 장면으로 우리 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 속에는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카카오 바이크가 눈 옷을 입고 서 있었다. 그 장면이 정겹기도 하고 아름다웠다.
이 눈의 작품들은 언제나 그 순간에 마음에 그리고 사진에 담아야 한다. 해가 뜨고 빛이 들면 이 아름다움은 녹아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린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눈의 아름다움도 한 순간이다.
우리가 담은 하아얀 눈꽃은 마치 안개꽃과도 같았다. 어찌나 소복이 피었는지 한아름 안아 딸아이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하얀 밤의 정원은 우리에게 많은 눈의 작품들을 선사하여 주었다. 그래서 그 받은 선물들을 열심히 우리의 사진과 마음과 기억에 담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 꺼내보며 아름다운 행복을 추억하고 싶어서.....
우리는 눈이 만들어낸 눈의 작품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또 담으며 그 작품들의 이름을 지어 보았다. 이 작품의 이름은 '하얀 설의 솔잎'이다.
이 눈의 작품은 ' 눈꽃'
그리고 이 장면은 '가로등 불빛아래'
'가위손'.'먼지떨이개'
'물결'
'감성장인'
'잔디들의 겨울 페스티벌'
이 장면을 보고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느낌도 들고 재미난 조각상 같기도 한 장면이다 싶었다. 누군가가 눈이 쌓인 바위에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처음엔 그 눈사람이 귀여워서 다가섰는데 앞쪽으로 돌아와서 보니 마치 귀여운 캐릭터가 식사를 하는 것도 같고 작업에 열중 중인 것도 같기도 한 장면이 눈과 바위 그리고 그 위에 눈사람이 어우러져서 인상적인 순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번 눈의 작품은 너무 멋져서 우리는 내내 망설이다가 이 작품의 이름은 끝내 붙이지 못했다.
왼편에 놓여진 사진은 산수유나무이다. 산수유 열매가 그대로 마른 채 나무에 열려 있는데 그 위에 눈들이 작품활동을 해 놓았다. 그 자태가 곱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여서 한 컷 담아 왔다.
맨 중앙에 놓여진 사진과 오른편에 놓인 사진은 솔잎에 쌓인 눈과 어우러진 이들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그 눈이 녹아 솔잎 끝에 맺힌 눈방울의 모습도 인상적이고 아름다워서 사진으로 담아냈다.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눈방울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이건 눈방울일까 물방울일까
우린 이 작품을 보면서 딱 멈춰 섰다. 마치 이번 눈의 작품은 해리포터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이 눈 쌓인 가지를 하나씩 들고 날아오르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유인 즉 이 눈의 작품은 마법의 빗자루를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 사진들 속 신호등은 노란 불빛이었다. 깜빡이는 신호등의 빛을 담아 보겠다고 둘이서 한참동인 씨름을 했다. 그러고는 결국 예쁘게 담았다. 신기하게도 이 노란색 신호등은 주변을 밝게 하는 능력이 있다. 노랑 신호등의 빛이 들어와 있을 때 담은 사진은 그 채도에 변화가 온다.
이것은 우리가 제일 감탄했던 눈의 작품이다. 비슷한 듯 다른 이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과자 같기도 하고 어느 집 창가에 세워진 고급진 가드 같기도 하고 머리 장식같기도 한 이 작품은 눈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들 것 같았다.
언제나 불빛은 밤의 운치를 더하여 주어 감성 가득한 공간을 연출해 준다. 어젯밤에도 이 빛들은 그러하였다.
글을 쓰며 보니 안개꽃 같아 보이던 이 눈꽃이 목화솜이 열린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팝콘을 닮아 보이기도 한다. 눈은 아무래도 요술쟁이인가 보다^^
어젯밤 우리는 이렇게 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담으면서 하얗게 물든 세상에서 눈이 만든 작품전을 관람하였다. 눈의 작품전은 참으로 섬세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눈의 세계에서 동심으로 세상을 느끼고 담았던 것처럼 선하고 예쁜 맘으로 매일을 섬세하고 신비롭고 아름답게 담고 또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