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만 이런 생각한다고?
나에게는 ‘봐야지’ 생각만 하고 몇 년째 리스트에서 지워지지 않는 영화들이 꽤 많은데 그중 하나가 <헝거게임> 시리즈다.
TV에서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 방송되길래 우연히 봤는데, 밤을 새워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 <헝거게임 : 모킹제이>, <헝거게임 : 더 파이널>을 다 봤다. (오전 5시까지 보느라 진이 다 빠짐)
내 기억 속에는 인기 시리즈로 저장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흥행이 저조해서 놀랐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 60만 밖에 안됐다니.
아무튼, 개인적으로 판타지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헝거게임> 시리즈도 재미있게 봤다. 아쉬운 점은 정해진 러닝타임 내에 소설로 쓰인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를 담아야 하다 보니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는 관객인 내 기준에는 매우 불친절한 영화였다.(보면서 이해 안 가는 장면들을 검색하면서 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킹제이가 뭔지, 왜 반군의 상징인지 등) 특히 1편인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에서는 거의 반절이 세계관 설명을 하느라 정작 ‘헝거게임’은 진행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영화의 배경인 국가 ‘판엠’, 수도 ‘캐피톨’의 장엄함과 주민들의 경악스럽게 과한 스타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헝거게임> 시리즈를 모두 보고 느낀 건 ‘왜 판타지 세계도 현실과 다르지 않은가’였다. 어느 정도 비교가 돼야 격차라고 말할 텐데, 캐피톨과 13개 구역의 생활 수준은 빈부격차가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하늘과 땅 차이다. 강력한 독재정권이 통제한 미디어와 자극적인 요소가 가득 찬 TV쇼. 독재정권이나 저항군이나 권력을 위한 욕망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레이디 퍼스트 대사까지!
1. 항상 10대들이 고생한다.
‘헝거게임’은 판엠의 12개 구역에서 10대 소년, 소녀를 1명씩 선출하여 총 24명 중 1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어린아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폭력적이다 못해 비인간적인 게임인데, 이런 게임을 왜 도대체 10대를 대상으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에 본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에서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총 쏘는 법과 호신술을 배운 강서해(박신혜 분)를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어 씁쓸했다.
2. 캐피톨 시민들에게 묻습니다. 심장에 손을 얹고 정말 그 패션 진심입니까?
부와 권력의 중심인 캐피톨 시민들은 화려함을 넘어서 괴상망측한 화장과 패션을 선보인다. 관객으로서 보는 재미있는 있지만 활동성도 최악이고 무엇보다 예쁘지도 않다.
3. 고귀하신 캐피톨 시민들께서 먹토(먹고 토하기)라니
‘헝거게임’ 우승자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분)과 피타 멜라크(조시 허처슨 분)는 12개의 구역을 돌며 우승자 투어를 다닌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궁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는데 여기서 사치스러운 캐피톨 시민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사가 나온다.
-Try one of these. They are divine.
-No, I can’t eat another thing.
-Here.
-What’s this?
-It’s for when you’re full.
-It makes you sick. so you can go on eating.
-How else could you taste everything?
4. 피타가 서브남주인 줄 알았던 나. 반성하자.
나는 주로 서브남주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을 보면서 캣니스의 고향 친구인 게일 호손(리암 헴스워스 분)에게 일찌감치 마음을 줬다. 당연히 그가 메인 남주인 줄 알았다.
피타가 등장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배우 톰 홀랜드가 떠올라서 더 마음에 안 들었는데(?) 거기에 방점을 찍은 건 과거 회상 씬. 피타가 비 맞는 캣니스를 바라보면 돼지에게 탄 빵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 장면을 보고 피타가 싸가지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실은 굶주리는 캣니스를 도와준 거더라. 연출을 잘못한 건지 내가 영화를 이상하게 본 건지.
싸가지없는 것도 모자라(나의 단단한 오해) 조공인 인터뷰에서 캣니스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세상에 공개고백이라니. 으악. 이때만 해도 최악의 서브남주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피타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 건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 초반부, 피타는 악몽을 꾼 캣니스의 비명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다. 그는 ‘나도 악몽을 꾼다’고 말하면서 곧바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헝거게임’ 이후 고통스러운 심정을 공감하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반응하는 모습에서 캣니스를 향한 배려가 엿보여서 마음을 확 빼앗겼다.
그리고 이어진 명대사
-Will you stay with me?
-Always.
5. 캣니스 에버딘은 제작진 입장에서 최고의 연기자다.
캣니스는 헝거게임 최초의 공동 우승자이자 매번 눈부신 활약을 보이는 이슈의 아이콘으로, 저항군에서는 혁명의 상징인 모킹제이로 이용당한다. 양쪽 진영의 선전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양측 전략가들의 고도의 심리전으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악화되는 상황에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캣니스를 보며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심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6. 이 영화, 애정 가는 캐릭터가 너무 많다.
캐피톨과 저항군의 정치싸움을 다룬 영화이고, 캐릭터의 희생이 필연적이라 그런지 애정 가는 캐릭터가 많았다.
-헤이미치 애버내시(우디 해럴슨 분), 술주정뱅이라 그렇지 통찰력도 좋고 무엇보다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갖고 있다. (<헝거게임 : 모킹 제이>에서 그가 아니었다면 반군 선전 영상은 쫄딱 망했을 거다.)
-에피 트링켓(엘리자베스 뱅크스 분), 헝거게임 참가자 추첨에서 즐기는 듯한 모습 때문에 악역인 줄 알았다. 그녀는 단지 마호가니 가구와 색색깔의 가발을 좋아하는 순수한 캐피톨 사람이었을 뿐.
-시나(레니 크래비츠 분), 캣니스가 게임에 출전하기 전 모킹제이 핀을 몰래 달아주는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나는 캣니스가 캐피톨에 입성했을 때 그녀도 요상한 옷을 입어야 하는 건가 싶어 발을 동동거리며 봤다. 내 불안함을 시나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가라앉혔다.
7. 수능 금지곡에 ‘The Hanging Tree’ 추가요!
개인적으로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에서 피핀이 식사하는 데네소르 앞에서 ‘Edge of Night’를 부르는 장면도 자주 다시 본다. <헝거게임>에서도 캣니스가 종종 노래를 부른다. 그중에서 아직도 내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는 단연 ‘The Hanging Tree’.
''Are you, Are you. Coming to the tree.”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이 죽음을 함께하자는 내용의 이 노래는, 피타와 캣니스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슬픔, 좌절, 포기 등 캣니스의 애절한 음성이 저항군의 합창으로 연결되는 연출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