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서울 : 그림작가 혜구 이야기
대기업 퇴사 후 한동안 청담동의 웨딩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기존 월급의 1/2 조금 넘는 금액을 받았고, 취업 자리를 직접 찾아주고, 서류부터 면접 준비까지 같이 했던 남자친구가 취업을 하자 연락이 줄어서 헤어진 찰나였다.
스튜디오는 커스텀 웨딩 콘셉트로 방문 고객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고, 촬영 소품으로 등장하는 예물은 부쉐론, 까르띠에, 불가리, 티파니 등이 기본이었다.
서른이 되니 슬슬 주변 친구들이 결혼 이야기를 한다. 어떤 친구는 아주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 내년 초에 식장을 예약했고, 또다른 친구는 많이 다투는 남자친구지만 조건과 불안함 때문에 결혼을 고려한다. 그리고 나는.. 나는...어떤가?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결혼 생각은 없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한편으론 "지금은 못해"가 아닐까 헷갈리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사랑은 있고, 돈은 없어."
이런 시기에 혜구 작가님을 만났다.
그림작가 혜구 이야기
Q: 강남에서 큰 사업을 했고, 청담동에 살았었잖아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든 걸 정리하고 강릉으로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라이프스타일이 맞지 않았어요. 바쁘게 사는 성향이 아니거든요. 사업이 잘 되면 그만큼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돈이 많아지고, 책임감도 커지죠. 경기도의 아파트에 살다가 가게 근처인 청담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집이 청담동에 있고 명품을 걸치고 다니니까 조금 특별하게 보던 사람도 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냥 집이 거기니까 편한 차림으로 근처 미용실에 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쇼핑을 했던 거거든요. 어쩌면 말씀하신 것처럼 부러워보이는 삶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청담동에 사는 동안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어요. 강릉 오기 전 이혼을 했어요. 결혼할 시기가 되고, 주변에서 '조건'을 따지기에 저도 ‘이 정도 조건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안 맞는 점이 있지만, 다 맞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결혼 후 3개월 째부터 힘들기 시작했고, 괜찮아지길 바랐지만 결국 '버티기'였던 거 같아요. 그렇게 7년을 버텼지만, 이혼하게 됐지요.
명품이 좋은지도 몰랐어요. 미안한 일이 생기면 대화보다 명품 하나 띡 선물 하는 게 위로가 되진 않더라고요. 당시 제 하루는 ‘오늘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빨리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은, 부모님이 계신 '강릉'으로 가자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사람은 도망쳤다고 생각할 거고, 어떤 사람은 힘들어서 떠났구나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저 저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찾기 위해 강릉으로 온 것이에요.
Q: 사업가였는데, 그림 작가가 된 게 신기해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요?
A: 이혼 조정 기간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어요. 마침 코로나도 터졌고, 방 안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고, 밥도 잘 먹지 않아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요. 더 더 고립되어 갔죠. 강릉행을 결정하고, 곧 떠날 집인데 책이 너무 많이 쌓여서 당근마켓에 가입해 책과 필요 없는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죠.
점차 밖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독서 모임에 나가게 됐어요. 모임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범죄심리학과 대학원생이었거든요. 범죄/추리물 책을 특히 좋아했기에, 이 사람에게 이것 저것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친절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주더라고요. 저에게는 근래들어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 생긴 거였지요.
이사를 앞둔 상황이고 저보다 훨씬 어린 사람에게 무슨 사심이 있었겠어요. 상대방이 저에게 호감을 표했을 땐 이놈! 그러면 안돼! 하면서 밀어냈어요. 강릉으로 올 때도 어디에서 지내는지 말도 안 하고 왔는데, 그럼에도 좋은 감정을 표하니까 사귀자는 말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어요.
어느 날 이 사람이 저에게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리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몇 시간이고 계속 그림만 그렸어요. 그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Q: 강릉에 있으면 혜택이 많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나요?
A: 강릉에 있으면 아는 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지방에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혜택을 주는데, 젊었을 때 왔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나이제한에 걸려 참여하지 못하는 활동들이 있거든요. 지역 기관에서 운영하는 SNS나 홈페이지 등을 잘 살펴보면서 관심있거나 해보고싶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추천드려요.
Q: 수익 창출을 하고있는 그림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수강생은 어떻게 모집했나요?
A: 수강생 모집도 당근마켓을 통해 했어요. 처음에는 몇 명이나 들어오겠냐 했는데, 첫 모집 때만 9명이 신청을 했어요. 물론 거의 남는 게 없는 수강료를 받으며 진행했었지만.
수강생들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만나서 작업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집 겸 작업실을 만들었죠.
Q: 수익이 서울에서 살 때보다 줄었다고 하셨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걱정은 없으신가요?
A: 솔직히 말하면,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이 없지는 않아요. 당연히 수입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예요. 저는 아직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일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제 막 2년 반에서 3년 정도 됐고, 아직 배우는 단계니까요. 가끔은 꿈보다 현실을 생각해야하나 싶기도 한데,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이 나에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게 좋고, 서울에서 사는 건 너무 힘들었어.
남자친구가 만난지 얼마 안됐을 때 약속시간에 조금 늦은 적이 있거든요. 미안했는지, 길을 걷다가 갑자기 뛰어가서 뭐 하나를 사오더라고요. 받아서 보니까 카카오프렌즈샵에서 사온 열쇠고리예요. 제가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니까 발견하고 헐레벌떡 뛰어가서 사온 거예요, 3500원짜리 열쇠고리를.
당시에는 집에 있는 대부분이 명품이었으니, 이 사람을 만났을 때 차림새도 그랬을 거고, 가끔 집에있는 값비싼 티셔츠들도 입으라고 갖다줬었거든요. 사람인지라 그런 상황에서 열등감 같은 게 생길 수도 있는 건데, 아무렇지 않게 열쇠고리를 사오는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그가 정말 큰 사람처럼 보였어요. 돈보다 분명 중요한 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