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서울 : 로컬기획자&싱어송라이터 꼬막 이야기
폭풍우가 치는 날씨로 앞도 잘 보이지 않던 날 남해에 갔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 반정도 걸렸다. 휴대폰은 침수되어 먹통이 됐고, 노트북으로 와이파이를 찾아다녔다. 속옷까지 다 젖은 몸으로 찾아간 꼬막님의 집은 낮은 낮은 지붕에 현관이 유리 여닫이 문인, 고즈넉한 주택이었다. 꼬막님은 서울에서 남해로 온 로컬기획자이자 싱어송라이터다.
손님들이 있어 바쁜 와중에도 난로를 켜주고 수건과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지은지 오래 되어 보이지만 깨끗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품은 집 안에는 엔틱 한 가구들이 들어서있었다. 난로 앞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축축했던 몸을 말리니 노곤해졌다. 거실에 있는 둥근 나무 의자와 기타, 빼곡한 책장, 친구들과 즐길 수 있다는 마작판, 두 대의 컴퓨터, 집 앞마당의 식물들, 담배 가득 채워진 재떨이까지...집은 사람을 닮아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는 비가 그친 후 짙게 피어오르던 남해의 바람, 흙과 나무냄새를 닮아 순수하고 기분 좋은 소리였다.
로컬기획자&싱어송라이터 꼬막 이야기
Q. 꼬막 님! 닉네임이 정말 특이하네요. 서울에서 이 먼 곳 남해까지 어떻게 오게 됐나요?
A. 서울에서 독서 모임을 함께 하던 친구 중 한 명이 남해가 고향이었어요. 그 친구의 아버지께서 "남해에 집과 창고가 있으니 그 공간에서 무언가를 해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남해에서 재미있는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는 문화기획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 일을 계기로 2018년부터 남해와 서울을 오가며 지내다가, 2022년부터는 서울에 거의 가지 않고 남해에서 주로 생활하게 됐어요. 이 집으로 이사 온 것은 올해 3월이고, 그전에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살았어요.
Q. 남해는 4만 명 정도 되는 인구가 살더라고요. 940만 명이 사는 서울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요?
A. 시골에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계가 형성되어 자주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죠. 저는 시골집이 없이 자랐어요. 조부님께서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서울에 있을 때도 활동적이었지만, 도시의 인프라를 그렇게 즐기진 않았어요. 영화제 보는 것을 좋아해서 전국의 모든 영화제를 거의 다 다니곤 했는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서 인프라가 저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많아졌고요. 서울과 남해를 오가며 지내다 보니, 점점 인프라의 중요성이 줄어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남해에 살면서 불편한 점은 크게 느끼지 않는 거 같아요.
사실 남해에서 먹고사는 게 가장 큰 걱정이고 문제였는데, 올해는 운 좋게도 일이 많이 들어와서 돈 걱정보다는 스케줄 걱정을 하고 있긴 해요.
Q.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요?
A. 왜 서울로 다시 가야 하나요? 제가 꿈꾸던 집을 이제야 갖게 됐는데.
부모님과 살 때는 볕 잘 드는 아파트에 살았지만,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북향에 열 평짜리 집에 살았어요.
외향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됐어요. 20대 중반까지는 주로 밖에서 전시를 보거나 공연을 즐기며 지냈어요. 그땐 집이 잠자는 공간에 불과했죠. 그런데 동거인의 영향을 받아 집을 가꾸기 시작했고, 친구들과도 집에서 놀게 됐어요. 빨래하고, 영화 보고, 집에서 보내는 소소한 시간이 좋아지더라고요. 식물이 좋고, 텃밭이 좋고,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는데 후암동에서 살던 자취방은 그러기엔 좁았죠. 남해에 와서도 셰어 공간에 살다가 이제야 꿈꾸던 집을 갖게 된 거거든요. 햇빛 드는 1층 집. 나의 공간.
Q. 노래 '얼룩말' 잘 들었어요. 가사 중에 [작은 울타리 밖 세상은 푸르고 넓은 초원이 아니었어]가 인상 깊더라고요. 얼룩말이 찾은 세상은 무엇이었을까요?
A. 글쎄, 어떤 세상이었을까.
어떤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깨달았는데, 자유롭고 싶어서 탈출했는데
또 이 세상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거예요. 자유롭지 않은 거죠.
비관성이 묻어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마음이 반영됐던 거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서울을 떠나 지방에 사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이제는 취사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소득, 인프라와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인프라가 극명하잖아요.
저는 늦잠을 많이 자는데, 매일같이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해 일할 수 있고, 마당이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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