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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이루리 glory Jul 08. 2024

가슴속에 새겨지는 나의 기억법

내 기억력이 그렇게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래된 기억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 생생히 기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 안의 깊은 곳에 각인되어 절대 꺼내볼 수 없도록 단단히 봉인이 된 사연도 있고 때로는 부드러운 물결처럼 흐르며 반짝거리는 추억도 있다. 방울방울 아로새겨지며 빛을 더해가는 내 안의 기억 조각들을 조용히 끄집어내어 하나씩 펼쳐볼 때마다 흠칫 놀랄 때도 있다. 절대 기억하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의 느낌, 세세한 대화 내용까지 기억나는 경우가 있어서다. 나의 이런 이상한(?) 기억력은 가끔씩 다른 타인을 기억할 때 발현될 때도 있었다. 


"그분 많이 아프셨잖아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죽는 것도 쉽지 않았대요. 애들이 있어서... 죽기 일보직전, 다시 마음을 고쳐서 먹었대요. 죽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럴 거면 차라리 더 치열하게 살자고. 그래서 그분은 수술 후 기력이 약한데도 아픈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운동을 하기 시작하셨다고 해요. 미치도록 운동을 하니 조금씩 근력이 생기고 몸이 나 아기지 시작했대요..."

이 내용을 전해 듣게 된 그분은 신문기자 출신이었다. 자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대변을 해주어 너무 고마웠다,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아주 오래전 했던 애기였는데,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기억을 하느냐고 신기해하셨다. 그때 잠시 생각해 본 후, 나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때 가슴이 아팠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았던 기억보다 안 좋았던 일들, 사고나 무서웠던 일들을 더 잘 기억하는 편이라고 어떤 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제를 써서 안 좋은 일들을 기억해 냄으로써 위험한 상황에 또다시 직면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굵직굵직한 중요한 일들은 잊고 감정적인 기억의 편린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융은 의식적으로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따르는 사람만이 인격을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삶은 실은 하나인 두 개의 수수께끼 사이에서 빛나는 잠깐의 정지 상태(?) 일 수도 있으며 중간항로를 거친 후의 종착지가 어딘지는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 우리가 찾아 헤매는 것은 결국 바깥이 아니라 결국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내 가슴속에서 크고 작은 생채기를 냈던 일들, 먹이 화선지에 스며들듯 깊이 퍼져있는 사연들을 이제는 하나씩 펼쳐서 조심조심 끄집어내 보려 한다. 내 안의 기억들을 꺼내면서 나를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면으로 들어가 이 상황에 있는 나는 누구이며, 지금 나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나와의 대화를 나누며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물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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