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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이루리 glory Jul 09. 2024

힐링 스폿,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

-양천구 모새미 작은 도서관 

 작년 말에 오픈한 이 작은 구립 도서관은 목동의 끝 바깥쪽에 있다는 뜻인 옛 마을 이름을 따서 '모새미'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킨다는 하얗고 파란 외관의 이 도서관을 다른 도서관 책자에서 우연히 알게 된 후, 혼자서 찾아가 보리라 마음을 먹고 동네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오른 후에서야 언덕배기에 우뚝 서 있는 특이한 형태의 도서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처럼 길눈이 어두운 사람은 네이버지도로 찾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위치였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들어서자마자, 나는 이 모새미 도서관을 나만의 아지트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오픈한 도서관이라 우선 책이 다 새 책이라는 점에 매료되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물론, 박경리의 <토지>도 새책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욕심껏 보고 싶은 책들을 꺼내어 놓고 주위를 둘러보니 기다란 큰 탁자와 작은 탁자 두 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에 사서와 나 둘만 있었다. 사서분은 뭐 하시는지 모니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작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꽤 편안한 상태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 모새미 도서관을 찾는다. 무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열기를 순식간에 식혀준다. 열감이 내리고 기분이 좋아져 가장 좋은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이 책, 저 책 다 읽고 싶은 욕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읽기에 빠져든다. 순간, 어렸을 때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사남매 중 막내인 나는 혼자서만 몸이 약해 언니들처럼 밖에서 뛰어놀지를 못했다. 대신 혼자 조용히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 책을 읽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은 책을 보고 또 보고 -그 당시 우리 집에는 다행히 천재학습대백과와 잡다한 지식들을 총망라한 천재학습전집(불행히도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과 계몽사의 과학, 역사 전집, 내가 너무 좋아했던 안데르센 그림명작집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읽기에 부족한 양은 아니었지만 전래동화도 읽고 싶었고 새로운 이야기책을 읽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다. 이제서라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이 좋은 공간을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여기저기 주위에 말하고 다녔는데, 오늘 가보니 사람들이 좀 늘었다. 개인적인 홍보를 좀 자중해야 하는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평일 오후 시간인데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청소년이 두 명이나 있다. 대견하고 기특해서 무엇을 읽고 있나 살짝 들춰보고 싶은 아줌마 본능을 애써 누르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한여름의 오후 햇살이 커다란 창을 통해 쏟아져 내린다. 등은 뜨겁지만 에어컨 바람에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여기가 그리스의 산토리니보다 못할 것도 없지.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책과 여유, 진정한 나만의 힐링 스폿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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