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이루리 glory Jun 25. 2024

국보 '세한도'를 기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보 '세한도'의 기부자 손창근 씨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95세. 지난 6월 11일 별세했지만, '세한도'를 기증 받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박물관 측은 당혹해 했다. 담당자는 "'세한도' 기증하실 때도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20년 근무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차남 손성규 연세대 교수는 "아버지께서 특히 박물관ㆍ산림청에 알리지 말라 당부했다"며 "뜻에 따라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렀다"고만 했다 (중앙일보)


               국보 '세한도'는 15m 두루마리 대작이다. 추사가 1844년 그린 그림에 청나라 명사 

               16명이 쓴 감상문, 오세창ㆍ정인보 등 우리 문인들의 글이 붙어 길어졌다. 그림 오른쪽 

             아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의 '장무상망'인이 찍혀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한 점 한 점 정(情)도 있고, 애착이 가는 물건들입니다.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 고민 생각하다가 박물관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손 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주세요.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손세기ㆍ손창근 컬렉션에 포함된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 ‘불이선란도’. 

                2023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어제 뉴스를 통해 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분은 구순 때『용비어천가』 초간본(1447)부터 추사의 난초 걸작 '불이선란도'까지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셨다. 부친 손세기님 때부터 대를 이은 기증이었는데 기부 때마다 인터뷰를 꺼렸으며, 금관문화훈장 수훈 때도 자식들만 보냈고 그 때 영상으로 전한 딱 한마디는 '감사합니다' 였다고 한다. 


 장자 내편 소요유(逍遙遊) 중, 성인무명(聖人無名)에 해당하는 분이신 것 같다. 성인(聖人)은 아무리 크고 뛰어난 공적을 쌓아도 그 공적에 따르는 명예를 구하지도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 이름을 구하지 않는 무명(無名). 장자는 성인의 조건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종교적으로 해탈의 경지에 오른 분들만이 가능한 경지일 거라 생각하지만 장자는 '이름을 구하지 않는' 하나 만으로도 성인의 경지에 오르기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잘난 척 하지 않고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도 여기에 글을 쓰면서 누군가는 읽어주기를 바라고 관심글이나 하트를 남겨 주길 원하고 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묵묵히 선행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서 고 손창근님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용한 기부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환영받을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잘난 척하지 않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만으로 성인이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욕구로 통한다. 내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욕구,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욕구.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 누군가는 나를 바라봐 주기를 바라고 인정해 주기를 더 갈망하게 된다. 글 하나를 써 놓고 누군가 읽어보고 잘 썼다 칭찬해 주면,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탄 기분에 젖어 콧노래를 부르며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칭찬은 내가 보여주고 물어봐서 억지로 받은 거였고, 차마 비평을 할 수 없어 해 준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을 것이다. 이 인간계에서 성인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어렵겠지만 장자 내편 소소유(逍遙遊) 중 인간으로서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지인(至人), 사심과 사리사욕을 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는 무기(無己) - 지인무기(至人無己) 를 이루도록 노력하며 살아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기 보다 '나' 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고 손창근님, 조용한 기부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존재는 화초인가, 잡초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