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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는 화초인가, 잡초인가?

by 글로이루리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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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화단을 가꾸고 있다. 우리집 근처는 아니라서 자주 가지는 못한다. 두 달에 한번 정도 볼일이 있을 때만 가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뽑아주곤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힘들어서 화단 공간을 반 정도 줄였는데도 여전히 2~3시간은 꼬박 앉아서 잡초와의 씨름을 해야 한다. 나는 화초를 가꿀 줄도 모르고 이름도 잘 모른다. 정원 쪽에는 거의 전문가이신 시어머니께서 모종을 가져다가 심어주셨고 힘들지 않도록 관리가 어렵지 않은 종류로 화초들을 선별해 주셨다.


해마다 꽃을 피우고 봄이 되면 다시 싹을 틔우는 화초들을 보면서 고맙기도 했고 몇 년간은 아이들 뒷바라지에, 일에 시간이 여의치 않아 거의 무방비 상태로 두었는데도 무성한 정글과 같은 풀 사이에서 이른 봄부터 아주가가 방울 방울 보라빛 꽃망울을 맺고, 여름에는 비비추가 하얀 백합과도 같은 고상하고 귀품 넘치는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맨드라미가 붉은빛으로 만개한다. 잘 가꿔주지 못했는데도 꽃을 피우는 화초들이 신기하고 고마워서 일이 있을 때면 꼭 들러서 주위의 풀이라도 한 번 더 뽑아주고 오게 된다.


자꾸 들여다 보면 그 존재를 알게 되고, 이름을 알게 되고, 애정을 더 가지게 된다. 손으로 뽑아주던 잡초가 버거워 호미를 들게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작업복을 입게 되었다. 오늘은 35의 이상기온을 보인 고온다습한 날이었다.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작업을 할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잡초는 신기하게 화초를 닮아 있었다. 아주가처럼 낮게 드리워져 자라는 화초 옆에는 망손 토끼풀 종류가 비슷한 잎 모양으로 자라나 있고, 옆으로 잎을 넓게 퍼트리는 비비추 사이에는 이름을 잘 알 수 없으나 비비추와 비슷한 뾰족 뽀죡한 잎모양의 잡초들이 자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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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퍼진 보라색잎이 아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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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있는 둥근 모양 잎이 비비추


살아남기 위한 저들만의 전략인가? 무심히 잡초들을 뽑다가 혼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얘들도 눈이 있나? 어쩜 이렇게 교묘하게 비슷한 모양으로 들어가 있을 수 있는거지? 비슷하니 잡초를 뽑다가 멀쩡한 화초를 뽑아놓고 놀라서 다시 심어주기도 여러번이다. 제일 헷갈리는 것은 풀모양 맥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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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잎의 맥문동


여름에 꽃을 피워서 더 귀하고 예쁜 화초인데 문제는 꽃이 없을 때 잡초와 구별하기가 제일 어렵다. 나한테는 그렇다. 오늘도 맥문동인지, 꽃잔디인지, 잡초인지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뽑았다. 이제 어느 정도는 식별이 가능하다고 자부하면서 뽑아놓은 잡초더미를 봤더니 맥문동이 꽤 많이 들어가 있다. 쉽지 않다.


잡초를 뽑으며 문득 드는 생각은,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어떤 존재일까라는 거다.

언젠가 꽃을 피울게 될 화초일까? 화초인 척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살고 있는 잡초일까? 나의 빛, 향기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이미 꽃을 피우고 있는 이들처럼 보이기 위해 그 주위를 겉돌면서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쑥 뽑히게 될지도.


화단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곧 비가 온다고 하니 물을 주지 않고 가도 될 것 같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올해도 예쁜 꽃을 피워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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