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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이루리 glory Jun 25. 2024

어느날 갑자기 핸드폰이 꺼졌을 때...





 충전해 두었던 핸드폰 전원이 꺼진 채로 어떻게 해도 켜지지 않았다. 


 순간 멍해졌다.


 내 안의 뭔가 큰 존재를 상실한 느낌... 당황스럽기보다는 막막하고 암담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행히 전자제품을 잘 고치는 남편이 옆에 있어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진단 결과,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완전히 고장났고 그 안의 데이터를 복원하려면 20~30만원 정도 돈을 주고 맡겨야 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 .머리는 핸드폰이 고장났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지만 내 가슴은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5년 정도 썼으니 그동안 아이들의 사진과 내가 기록한 정보들이 다 사라지는거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려 했다. 남편은 속도 없이 이제 다음달이면 신형 나오는데 구폰 쓰면서 조금 기다려 보자 했다. 항상 기름에 불을 붇는 우리 남편. 속상한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생각은 없는가 보다. 뭘 기대할까 싶어 더 화나기 전에 집을 나왔다. 아직 6월초인데도 날씨가 덥고 햇볕은 뜨거웠다. 


 생각을 정리해보자. 내가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을까. 남편 말대로 구폰을 연결하면 카톡도 안되고 인터넷 쇼핑몰, 제일 중요한 전자 결제도 안된다. 음악도 들을 수 없다. 이게 가능할까? 그리고 중요한 사람들 연락처는? 그 부분에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연락을 오랫동안 못한 사람들은 영영 헤어질 판이다.     생각을 잠시 멈추고 눈을 들어 보니 안양천 도로변에 제주도 유채꽃처럼 노란 물결을 이룬 금계국과 이름을 몰라서 너무 미안한 안개꽃같은 하얀 꽃무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 반짝 빛나며 꽃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왜 나는 안양천을 걸으면서 이 꽃들의 존재를, 이렇게 예쁘고 화사한 꽃들을 마음에 담지 않고 그냥 휙획 지나쳤던걸까? 귀에 이어폰을 꼿은 채 음악을 듣거나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일거다. 핸드폰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한낮의 열기 사이를 뚫고  불어오는 바람의 기운도 느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길가에 활짝 핀 빨간 장미꽃이 반가워 고개를 숙여 향을 맡아 보았다. 은은한 향은 어렸을 때 꽃잎을 따서 맡았던 향 그대로였다. 아기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꽃내음은 나중에 인위적인 장미꽃향에서 느낀 저속한 싸구려 향이 아니었다. 








 자연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만 변했고 세상이 주는 편안함에 길들어져 있었구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단순히 소유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집착 없이 사용하라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과잉의 시대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살고 있다.  '흐르는 물도 아껴쓰라'는 말이 있다. 자연이 주는 한 방물의 물은 투명하고 말없는 역사를 품고 있다. 그러니 그 동안 소중함을 잊고 펑펑 써온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려고 내 소중한 일부가 갑자기 기능을 상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떠나면 내 물건도 떠난다'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난 이런 경우를  몇 번 경험했다. 시어머니께서 결혼 초기 장만해 주신 다이아 목걸이를 너무 많이 하고 다녀 좀 지겹다 느낀 순간, 다음날 줄이 풀려서 펜던트와 목걸이 줄까지 다 잃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비싼 귀금속은 하지 못한다. 잃어버릴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그런 것을 몸에 두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오히려  반짝이는 큐빅이 더 예쁘고 편하고 귀하다. 



 집에 오는 길, 저녁이 되어가니 선선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았다. 남편 말대로 전화와 문자만 되는 구폰을 쓰면서 새폰 살때를 천천히 기다려 보기로 마음 먹었다. 카톡은 인터넷이나 탭으로 연결해서 집에서 확인하면 되고, 연락이 되는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수첩에 전번을적어 달라 부탁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교회 언니가 웃으면서 "이런 경우는 20년만에 처음이야!" 하면서 전번을 적어준다. 수첩에 적힌 사람들은 나와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지인들이다. 아날로그가 주는 훈훈한 정이 반갑고 기쁘다. 핸드폰이 고장나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돠고 관계도, 내 삶도 정리되는 것 같다. 


 조금은 덜어내고 버려야 가벼워지개 돠는거다. 솔직히 불편하지만 카톡을 늦게 확인해도  큰일날 일은 없었다. 내려놓고, 버리면  모자란대로 그렇게 살아지는거다. 그런데 왠지 마음은 더 편해졌다. 조금이라도  비웠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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