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족함을 알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준비했던 과학고입학은 성공적이였고,
20대의 후반에 다다른 지금 그당시 부모님의 모습은 내가 보아왔던것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학교 3학년, 과학고 최종합격자 발표가 나던날 교무실 컴퓨터에 옹기종기 모인 친구들의 표정은
밝기도, 중학생의 그것이라고는 말하기 안타까울 만큼 어둡기도 했다.
합격의 기쁨을 누리며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고등학교와 함께 사용하는 매점을 가던 길 사이에서
운동장 철조망 너머로 먼 산을 바라보면서 들었던 기분은 막연한 즐거움보다 걱정과 두려움이였다.
나는 당시 학원에서도, 과외선생님도 과학고에 가기는 힘들수 있다는 입장이셨고
졸업을 한 지금도 돌아보니 중학교 성적을 잘 쌓아 운이 좋게 들어간 케이스 였음을 뒤늦게 확인 했다.
입학전 방학기간에 진행하는 소집교육에서 쏟아지는 과제를 바라보며 '무언가 걱정된다.'는 합격당시의 기분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기 시작한다.'로 바뀌었고, 과제속에서 허덕이며 입학을 준비하며 지새던 새벽의 생활이 반복되어 갔다.
지지리도 말안듣는 20대 후반의 내가, 과연 그때는 무엇에 홀려 그렇게 자발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던 것일까? 로봇개발자가 되고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것을 온전히 원한다기 보다 미래에 먹고살기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강했던듯 하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기 시작한다.'는 입학식을 넘어 본격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될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로 판별났다. 늘 해오던 대로 시험준비를 열심히 하고 밤을 지새우면 학습량을 충분히 소화하면서 좋은 성적을 받을거라 기대했지만, 과학고에서의 그것은 내 상상을 아득히 넘는 범위였다.
그보다 나를 더 괴롭게 만든것은 '노력으로 극복이 불가능할 수 있겠다.'는 단정적인 생각이였다.
과학고의 대다수 학생들은 밤을 지새웠고, 누군가는 수학에, 물리에, 영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거나
미리 과학고의 학습내용을 탄탄히 공부해온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노력은 과연 모든것을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반복될수록
과학고에서는 더이상 밤을 지새워 공부하기도 힘들어갔고, 중학교에서는 상상해보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곤
'누군 인문게로 다시 전학을 간다더라.'는 소문따위에 나 또한 그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