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피고 있는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마지막 간청 같은 이 문장은,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 입은 영혼의 부탁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낮은 음성처럼 들렸다.
광주의 아픔은 내 세대가 직접 겪은 고통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그 어둠이 내 안에 스며드는 듯했다. 총칼 앞에 쓰러져 간 소년의 모습, 남겨진 자들의 상처와 침묵, 그리고 끝내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무게. 책 속 인물들의 고통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우리 곁에서 이어지는 울음이었고,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절망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를 ‘밝은 쪽’으로 초대한다. “빛이 비치는 쪽”이란 단어는 내게 단순한 희망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책임처럼 다가왔다. 고통을 직시한 뒤에도, 결국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청 말이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는 내 삶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누군가를 어둠이 아닌 빛으로 이끌어 주고 있는가. 혹은 나 역시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꽃이 피는 쪽으로 데려다 달라’ 속삭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한강의 문장은 잔인한 시대의 상처를 기록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놓지 않는다. 기억을 붙드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고통인지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과 “꽃”을 말한다. 그 담담하면서도 간절한 어조가 내 가슴을 오래 두드렸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다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누군가를 밝은 쪽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꽃이 피는 쪽으로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