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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올 이상은 Aug 05. 2023

할슈타트에서 시작

알프스 도시


할슈타트

 이곳이 중세 유럽의 패권국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선선하기가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이번 여행은 알프스를 중심으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도착 첫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할슈타트로 출발한다. 강원도 정선 같은 산길에, 사이사이 양 떼가 뛰어놀만한 초지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산은 가파르고 험하고 남성적이다. 거의 두 시간이 되어서야 깊은 산속에 이런 호수가 있을까 싶은 크고 잔잔한 호수와 그림 같은 마을이 나타난다. 할슈타트다. 구석구석 돌아봐도 1시간도 안 걸릴 이 작은 마을은 요정이나  난쟁이가 나올 법한 이야기 속 마을 같다. 이리저리 인증 사진을 찍고 뜨거워진 햇볕을 피할 겸 점심도 먹을 겸 음식점을 찾는다. 점심으론 슈니첼을 먹었는데 같이 나온 잼과 애플파이가 일품이다.


잘츠부르크 미라벨정원, 호헨 잘츠부르크성

 이제 본격적으로 잘츠부르크를 돌아보기로 한다. 처음 간 곳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미라벨 정원과 대저택. 1600년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지은 곳이란다. 자식도 여럿 낳았다니 성직자로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옆에는 모차르트 음악대학원이 보이고 구시가지 쪽으로 좀 더 가니 모차르트가 17년 동안 살았다는 핑크색 건물의 모차르트 하우스가 보인다. 구시가지 거리 양쪽으로 4-5층은 돼 보이는 예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거리 건물은 작은 창문들이 나 있는데 창문 크기에 따라 세금을 물어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들이 다 어둠침침한 게 이유가 있었다. 거리 한쪽 끝은 높은 절벽 위에 수로가 있는데 물을 쏟아내면 비탈길을 통해 강 쪽으로 무엇이든 휩쓸고 내려간다고 한다. 화장실이 없었을 중세 시대에 기가 막힌 오물 처리 시스템이란다.

 박물관과 잘츠부르크 돔 대성당이 있는 레지던트 광장을 지나 호헨 잘츠부르크 성으로 들어간다. 푸니쿨라에서 내리자 불어대는 골바람이 더위를 씻어 내고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시가지도 강을 따라 시원하게 펼쳐진다. 성 망루에 배치된 대포에 매달려 대포 쏘는 시늉도 내보고 창살에 매달려 밖을 향해 소리치는 시늉도 해본다. 잘츠부르크는 볼 것도 많다. 잘츠부르크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니 수긍이 간다.

 인스브루크는 합수브루크가 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주도가 된 도시다. 인스브루크에 도착해 의회 건물, 야코프 대성당, 호프부르크 궁전을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막시밀리안 1세가 광장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보기 위해 만들었다는 황금 지붕 건물이 눈에 띈다. 개선문과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노르드케테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곧바로 돌아서 나간다. 콩그레스 역에서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고 1905m 제구르베를 거처 2334m 하펠레카르 정상에 오른다. 인스브루크를 발밑에 두고 사진 한 장을 찍는다. 마치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작은 마을 같다. 1900m 제구르베만 해도 바람이 시원한 정도였는데 하펠레카르 정상은 바람도 심하지만 칼바위들이 사방을 둘러쌓고 있어 나무도 자라지 못할 만큼 삭막하다. 그래서인지 올라온 지 채 5분도 안되어서 손이 얼고 얼굴이 얼얼하다. 2000m 산이 이런데 8000m 산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험한 산을 즐기는 산사람들이 상남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여유가 많은데도 바람과 추위 때문에 제구르베로 내려와 따뜻한 카푸치노를 한잔한다.

 네 시간을 달려 스위스 국경을 넘고 도착한 곳은 마이언 벨트 하이디 마을이다. 일본 만화 알프스 소녀가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진 마을이란다. 웃기는 얘기지만 일본이 스위스 경제를 살린 셈이다. 훈장이라도 수여해야 할 일이다. 하이디 관련된 온갖 기념품이 다 있다. 난 아이들을 위해 하이디가 그려진 티셔츠를 집어 든다.

 루체른으로 이동하여 빈사의 사자상을 찾는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튈르리 궁전을 사수하다 전멸한 스위스 용병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자의 표정은 고통스럽다.

 5분 거리에 카펠교가 있다. 700년을 견뎌낸 유럽 최초의 목조 다리 카펠교가 로이스 강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처음과 끝이 탑 모양이라 더 운치가 있다. 주변 카페 건물과 노천카페가 그 운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거리는 좁고 사람으로 북적이는데도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스크림, 카페, 옷 가게, 명품시계 상가가 즐비하다.


 한 시간 반을 달려온 알프스의 관문, 호수의 도시 인터라켄은 정말 아름답다. 호텔 테라스에 앉아 브레인츠 호수를 바라보면서 와인 한 잔, 멋스럽다. 호수에는 백조와 청둥오리가 노닐고, 호수 주변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아이들을 어르는 사람들이 평온해 보인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놀랍다. 평화롭다.

 브리엔츠 호숫가 호텔에서 새벽을 맞는다. 남쪽 테라스로 들어오는 새벽 햇빛이 눈부시다. 호수가 물결치는 대로 태양이 두 개도 되었다 세 개도 되었다 한다. 물안개도 어슴푸레 깔려 있다. 아이들 어릴 적에 제천 청풍호에서 새벽 물안개를 볼 때처럼 얇은 양털 이불을 덮은 포근한 느낌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보다 나이가 들고 어린 아들들이 옆에 없다는 것. 이내 햇볕의 열기가 느껴진다.

 나는 지금 알프스의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삼 형제를 한눈에 보는 쉴트호른에 와 있다. 보기만 해도 거칠다. 산사람들이 왜 산을 좋아하는지 조금 이해하게 된다.  매서운 바람과 거친 절벽을 거스르고 정상에 오른 그 순간은 등산가 스스로 신이 된 착각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아래쪽 산에서는 패러글라이더가 날아다닌다. 1000m,  2000m 산이 부지기수다. 몰려오는 구름도 발아래 깔린다. 스위스제 화이트와인 한잔 꼭 마셔야 하는 곳이다. 알코올에, 산소가 부족한지 좀 어지럽다. 이제 케이블카를 타러 내려가야겠다.

 취리히 도착하자 그로스뮌스터, 프라우민스터, 성 베드로 성당의 종탑이 눈에 띈다. 프라우민스터와 성 베드로 성당 두 곳은 시계탑도 있어 더 멋들어진다. 취리히는 리마트 강을 따라 양쪽으로 석조 건물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번화한데 강폭이 적당 해서지 싶다. 한강은 규모가 커서 보긴 좋아도 상권 형성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명품 거리가 나온다. 알만한 시계 브랜드와 옷 브랜드는 다 있다. 올 초 부도 사태가 났던 크레디트 스위스은행 건물도 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직도 화려하게 버티고 있다. 거리엔 트램이 꽤 돌아다닌다. 깨끗하고 현대적이라 한번 타보고 싶다. 타고 내리는데 표를 확인하는 사람도 기계도 없어서 그냥 집어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마지막 행선지 라인폭포는 유럽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폭포란다. 나이아가라나 폭포를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우비를 입고 배를 타고 폭포 앞까지 가기도 하고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나 다른 점은 작은 성이 있고 그 옆을 기차가 달린다. 운치가 있다.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여서 관광객도 많다.

 유럽여행 은 늘 기대 이상이다. 특히 이번 여행은 인공물과 자연의 조화로움 그리고 자세히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서 좋았다. 城과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된 중세풍의 작은 古都마다 스토리가 있다. 적당한 폭의 강 양쪽으로 발달된 종탑과 건물 그리고 화려한 카페거리에 즐거움이 있다. 잔잔한 호수를 마주하는 호텔 테라스에서 와인 한잔 하는 것도 여유롭고 평온했지만 3000m 산 정상에서 보는 설산의 풍경은 경이로움이었다. 모든 것이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흘러가다. 갑자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날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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