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짝이는 별이 좋다. 어릴 적 늦은 귀가 길, 불빛 없는 집 앞 골목길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은하수를 우연히 본 후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는 것이 위시리스트다. 여러 번의 시도에도 제대로 별을 보기가 어려워 몽골 초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동창도 그곳에 있고, 일석이조다. 별을 잘 보려고 값싼 망원경도 하나 구입해 짐에 넣었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칭기즈칸 국제공항까지 세 시간 남짓, 멀리만 느껴졌던 몽골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비행시간이 짧아서인지 비행기 안에서 주던 식사는커녕 간식도 없어 항공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울란바토르 시내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을 계속 보고 있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이미 누렇게 변한 초원과 그 위에서 풀을 뜯는 말과 양 떼뿐이다. 초원의 나라답다.
시내에 들어서자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교통은 최악이다. 번화가까지 불과 몇 킬로 안 되는 거리인데도 서울에서 몽골을 오는 시간만큼 멀리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바쁜 일이 있는지 대로상에 차를 세우고 내려 걸어가더니 이내 차를 앞질러 멀리 사라진다. 울란바토르에 비하면 서울의 교통체증은 양반이다.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나니 반갑다. 말을 매력 있게 하는 친구다. 목소리, 힘주어 말하는 톤, 중간중간 넣는 추임새, 눈을 맞추는 태도가 신뢰감을 준다. 닮고 싶다. 그 친구는 현지 기업사장을 하고 있는데 마침 레스토랑도 같이 운영하고 있어서 몽골 음식으로 우리를 대접한다. 맛도 있었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서 우리 일행을 맞아주고 식사까지 준비해 준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이제 숙소가 있는 국립공원 테를지로 떠난다. 오늘 밤이면 쏟아지는 별을 보게 된다.
테를지까지는 꼬박 3시간. 입구에 모여 있는 게르들은 조잡하고 풍광도 그리 아름답지 않다. 우리 숙소는 거기서도 여러 번 개울을 더 건너 한참을 들어간다니 다행이다. 개울을 건너려 수륙양용차를 기다린다. 우리 말고도 다른 일행이 있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날씨도 꾸물거리고 점점 회색빛 구름이 몰려드는 것 같다. 빗방울도 몇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날도 어둑어둑 해진다. 오늘 밤 별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오늘 못 봐도 이틀이 남아있긴 하다.
우리가 머물 게르를 할당받고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칠 줄 모른다. 게다가 넓은 리조트 안은 가로등을 밝게 켜놔서 별들이 가로등 불빛을 이겨낼지 모르겠다. 자정이 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내일을 기약하며 그냥 자기로 했다. 게르 안은 춥기만 하다.
얼마나 지났는지 옆 친구가 일어나라고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벌떡 일어나 재빠르게 망원경을 챙기고 게르 밖으로 나간다. 별이 보인다. 학수고대하던 별이다. 공기가 맑아서 인지 가로등 불빛에도 꽤 많은 별들이 보인다. 어릴 적에 익힌 카시오페아 자리와 북두칠성을 알아본다. 자세히 보려고 망원경을 들이대보지만 한눈에 별이 들어오지 않는다. 가로등 불빛이 없는 어두운 곳을 찾아 고개를 젖힌다. 점점 또렷해지고 작은 별들이 달려들 듯 내게 쏟아져 내린다. 본태미술관에서 본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의 방’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코타키나발루 맹그로브 숲 속에서 손전등을 비출 때마다 반짝이던 수 억 마리 반딧불 같기도 하다. 자세히 보니 은하수도 엷은 구름처럼 흐르고 별똥별도 보이기 시작한다. 별똥별이 사선을 그리며 달리다 두꺼비 놀이하듯 이내 사라진다.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뜬다. 이대로 백일 동안 누워 별들의 군무 아래서 꿈만 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어젯밤을 생각하고 게르 밖으로 나간다. 어젯밤과 달리 새벽안개와 구름으로 덮인 초원은 꿈꾸는 듯 아스라하다. 사방을 둘러보니 넓은 분지에 둘러싸인 산에는 온통 누런 낙엽송이다. 애리조나 카우보이 영화에서 보던 장면과 흡사하다. 처음 보는 광경에 매료되어 셔터를 누른다. 쏟아지는 별과 함께 생각하지도 못했던 또 다른 몽골의 풍경을 덤으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