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B

신중년의 일상

by 마마래빗

오랜만에 B와 통화했다. 탄핵미사와 그녀의 성가대 합창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습관처럼 “어머니는 어떠신지” 물었더니,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어머니, 한 달 전에 가셨어.”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냥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드렸어.”라고 했다.


B의 시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간병인과 자식들, 특히 막내며느리인 B의 보살핌 덕분에 요양원에 가지 않고 본인의 집에서 지내셨다. B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평소 남편이 어머니께 잘했던 모습을 이어받아 시어머니를 살뜰히 모셨다. 반찬거리, 제사, 명절 준비, 어머니의 병원 진료 등 모든 일을 묵묵히 해냈다.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물으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두 형님은 서울에 계시고, 원래 남편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가 해왔던 일이야.”


작년부터 어머니는 건강이 급격히 쇠락해 거의 침대에서 생활하셨다. 다른 가족들은 요양원으로 모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B는 끝까지 반대했다. 이후 남편의 형님 내외분이 자주 내려오고, 가까이에 사는 시누이와 간병인의 도움으로 시어머니는 본인이 살던 집에서, 마치 잠자듯 편히 새벽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녀가 이야기를 전하며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자, 나도 함께 울컥했다. 94세의 홀어머니를 떠나보낸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집에 와서 한참 울었어…” 그것은 시어머니를 잘 모시겠다고 남편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과, 남편이 떠난 뒤 의지처가 되어준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실감 때문이었으리라.


막내아들이 고1일 때 남편을 떠나보내고, 그 아들이 어엿한 피부과 의사가 될 때까지 그녀는 쇠락해가는 어머니를 돌보며 조용히, 소란스럽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두 딸을 시집보내던 날, 혼주석에 혼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아마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스스로를 다독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유럽 여행을 같이 가자고 권유했을 때도, 그녀는 “어머니가 그 사이에 어쩔지 모르니까, 못 가겠어.”라며 몇 년째 해외여행을 미루었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현명하고 강건한 그녀다. 그리고 씩씩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친구로 알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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