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의 일상
어머니가 추석 때 남동생 가족과 함께 아버지 산소를 다녀오신 후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버지의 산소는 선산에 모시려던 계획을 바꿔, 자식들이 자주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일단 모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화장하여 함께 이장하기로 했고, 그래서 근교의 공원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서울에서 4시간이나 걸려 내려오는 두 여동생들은 올 때나 갈 때 아버지를 찾아뵀다.
아버지의 산소는 양지바르고, 불어오는 바람도 따뜻하며, 하늘이 무척 예쁘게 보이는 곳이다.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곳은 참 좋은 장소다. 그런데 벌써 이 산소의 임대 기간이 끝났고,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이장하거나 연장하라는 안내장을 남동생의 집에서 보셨단다. 아버지에게 각별한 마음을 가진 그 녀석은 알아서 하겠다며, 어머니께는 모른 척하라고 했단다. 지난여름부터 나를 포함한 다른 형제들과는 교류가 전혀 없는 그 녀석이, 어떻게 할지, 우리는 그저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걱정도 오늘 하루뿐일 것이다. 어머니도 90세에 가까워지니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뿐인 아들의 전화가 없다고 서운해하지 않으시고, 걱정도 금방 잊어버리신다.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산소 문제는 살아있는 자식들이 걱정하고, 해결할 일이니, 어머니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늘의 걱정을 누그러뜨려준다. 어머니의 환 한 미소로 일단락되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그리고 나도 나의 죽음을 떠올리며, 나의 묘를 그려본다. 어느덧 살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세상을 떠나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강가에 묘비 대신 벤치를 놓아달라고, 차가운 대리석 묘비보다는 나무 의자가 더 따뜻할 것 같다고, 그 벤치에 누군가 앉아 생각에 잠기거나, 사랑을 나눠도 좋고, 아무도 오지 않는 날, 봄에는 낙하하는 꽃잎들이, 겨울에는 흰 눈이 소복하게 쌓여도 좋겠다는 어느 시인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실제로 영국 템스 강변에는 그런 벤치가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면서 묘비의 주인공을 기억한다고 한다.
나는 죽으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지만, 살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찾아올 수 있는 위로의 장소가 필요할 것 같다. 그들이 와서 실컷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며, 때로는 행복해서 함께하는 엄마가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쉽게 올 수 있는 장소가 좋을 것 같다. 강가도, 수목장도, 아니면 여럿이 함께 있는 납골당도 괜찮다. 잠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