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은 잠들기가 힘들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에, 불안한 미래에, 누군가를 향한 시샘에...
그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나만의 타임슬립을 시도하곤 한다
타임슬립(time slip;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는 시간 여행).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유행처럼 책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유행처럼 이야기 중심 소재로 다뤄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신선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정확한 출발선이 언제였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일요일 밤이면 근거 없는 불안한 마음에 잠을 설치고는 했다.
특히, 다음 날 부담스러운 일정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날이 밝아올 때쯤 쪽잠을 청하고 피곤함에 밤새 시달린 비참한 몰골로 출근길을 나서곤 한다.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았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일고 나를 위한 선물도 사고 차도 마시고 향도 피우고 뭐 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별로 의미가 없었다. 새로운 루틴에 강박이 생기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핸드폰을 저 멀리 치워버리고 멍하니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가능한 기억해 낼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의 시작점이 어디인지를 탐색해보기로 했다.
가장 또렷한 내 기억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나를 향한 최초의 칭찬은 언제였나,
걱정 없이 뛰놀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고 있었나,
그게 가장 어린 시기의 기억이 맞는가, 더 어릴 때 기억은 없나
내 기억의 가장 뚜렷한 칭찬의 순간은, 초등학교 2학년 경필 쓰기 대회에 우수상을 받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는 학교에서 글씨를 이쁘게 쓰는 학생들에게 상을 주는, 뭐 그런 상이 있었다. 이미 정년에 가까우셨던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가졌던 담임선생님이 "OO 이는 글씨를 참 잘 써. "하시며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다른 학생들의 박수를 이끌어내던 그 장면이다.
더 과거로, 또는 덜 과거로 왔다 갔다 하며, 기억들을 탐색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찡그리고 있던 얼굴에 미소로 펴지고, 즐거움에 피식거리기까지 한다. 이런 나만의 타임슬립 이후에는 늦게 잠이 들어도 다음날 무겁지가 않았다. 오히려 잠을 많이 잔 어느 날보다 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일요일 밤에는 의미 없이 SNS 피드 넘기며 허송세월 보내는 것보다는, 가장 즐거웠고 걱정 없는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는 기억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의미를 두지 말고 반복하다 보면 즐겁게 잠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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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일요일은 휴식도 퇴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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