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와 강아지

메이저카드, 0번 바보(The Fool)

이들은 환상의 콤비일까요? 아니면 최악의 커플일까요? 바보와 강아지 말이예요.

이 남자를 보세요. 먼길 떠나는 여정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복장과 준비성 없는 작은 보따리, 그리고 이상만 높아 눈길은 저 먼 하늘을 향해 있어 바로 앞 낭떠러지를 보지도 못하는 바보. 두팔 벌려 온 태양빛을 듬뿍 받으며 노자 돈도 필요 없다는 듯, 장미 한송이만 든 저 무모해 보일 정도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반면에 바보의 발밑에는, 한 치 앞에 낭떠러지가 있음(위험)을 알리며 온 몸으로 그를 막아서는 흰 강아지. 설사 그가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함께 뛰어 내릴 태세인 듯, 자신에게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저 바보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강아지. 헌신적이고 옆지기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는 상징이지요.


MBTI의 성격 유형으로 보자면, 호기심 많고 열정적이며 모험을 즐기는 경향이 강한 바보는 'ENFP'(외향적이며 낭만적이고 감정적이며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는 유형)의 특성이 강해 보여요. 반면 신뢰감 있는 태도로 타인을 돌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강아지는 ISFJ(조용하고 신중하며 현실적이고 헌신적이며, 체계적이고 목적과 방향성이 뚜렷한 유형)의 모습을 보여줘요.


한마디로 'ENFP'가 불꽃같은 스파크 형이라면, 'ISFJ'는 주인 뒤의 숨은 실세 라고 할 수 있지요. 바보가 진정한 인생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강아지와 함께 가는 마음, 즉 서로 보완하며 각자의 강점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공유할 때 그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 하네요.


이 둘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떠올랐어요. 도무지 어울리는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우리 부부 말이예요.

남편은 딸이 없는 집의 막내 아들 / 저는 아들만 있는 집의 장녀, 무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천상의 DNA를 가진, 날씬하다 못해 저체중인 남편/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과체중을 뛰어 넘는 나, 손재주는 고사하고 만지기만 해도 고장 내버리는 신의 손가락을 가진 남자/손으로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고생하는 무수리 손가락을 가진 여자, 술을 좋아하는 남편/ 술 먹은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나, 독서와 글씨 쓰는 일은 산업혁명 이전의 노동이라 여기는 남편/독서와 글씨 쓰는 일이 최고의 여가라고 생각하는 나, 계획성 없이 즉흥적인 결정을 좋아하는 남(의)편/무엇이든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성격인 INTJ 인간형인 나, 자유롭고 구속받는 것 싫어하는 남(의)편/걱정과 배려가 지나쳐서 잔소리가 많은 나.... 열거를 하자면 하루 종일도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티격태격, 악다구니 쓰는 날이 있다가도 또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수십년을 무사無事히(?, 사실은 유사有事히) 살아왔네요^^

< 유니버셜웨이트타로카드 메이저 0번 바보카드 >


그런데, 누가 바보이고, 누가 강아지 인 걸까요? 물론 남편이 '바보' 이고, 내가 '강아지' 라고 여기지요.(지금도 그렇게 우기고 있답니다^^). 허즈번드가 주로 일을 저지르면, 수습하는 것이 와이프인 내 몫인것 같아서 결혼의 수익성을 따지자면 허즈번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 온 팔자'이고 나는 덕분에 '호박'이 되어 버렸답니다.ㅋㅋ

그런데, 결혼 전 각자의 생의 시간보다 결혼 해서 함께 보낸 시간이 더 많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이젠, 이 0번 바보 카드를 통해 느낀게 있어요.

만약, 저 바보의, 세상을 향한 가벼운 발걸음이 없었더라면 저 강아지는 세상 밖으로 나가 볼 일 도 없었을테고,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 였는지 몰랐겠지요. 다만 주인에게 애교 떤 값으로 받는 먹이나 먹으며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자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 같아요. '그랜드 캐년이 두려울 쏘냐,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따라와!' 휘파람 불며, 렛스 고!를 외치는 주인인 바보 덕분에 더 큰 세상에서 별별 경험을 공유하고 고생을 기꺼히 감내한 동반자가 되었네요.

강아지가 진정한 인간의 벗이 된 것은 가족에 대한 충성스럽고 한결같은 마음, 그리고 자기보다 더 큰 인간조차도 보호하겠다는 사랑 가득한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인간이 개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아니 내가 (고양이 보다) 개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네요. 좋아하다 보니 닮아 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러나, 이젠, 한국의 늙은 바보는 더 이상 모험을 떠날 필요가 없겠네요. 따뜻한 집에 누워서도 세상일을 두루 볼 수 있는 첨단 장난감이 있으니까요. 덕분에 이 늙은 강아지도 더 이상 짖을 일 없이 편해지길 바래보아요. 아 참, 난 (늙은) 호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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