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퀼트로 집을 지으며

어린 시절, 저는 제가 살 집이 새로 지어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던 행운아였습니다. 사랑방에 온 식구가 모여 자며 본채가 올라가는 것을 매일 지켜보았지요. 기초 공사는 더뎠고, 먼지가 날리는 불편함 속에 "도대체 언제쯤 새집에 들어갈 수 있느냐"며 부모님께 매일 조바심 섞인 질문을 던지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소망하는 집 한 채씩을 품고 삽니다. 하지만 집을 짓는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기초를 다지는 지루한 시기를 지나야 하고, 문도 창문도 없이 각종 자재로 어지러운 현장을 견뎌야 하며, 때로는 설계와 달라 깎아내거나 덧발라야 하는 시행착오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느릿한 기다림 끝에 도무지 형체를 알 수 없던 공간이 안방이 되고 마루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파트라는 편리한 주거 형태에 익숙해진 지금, 저는 직접 집을 짓는 대신 바늘을 들어 퀼트로 집을 짓습니다. 완성작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다 보면 지붕의 색감이 어색해지거나 바늘땀이 고르지 않아 결국 실을 뜯어내고 다시 꿰매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때로는 내팽개치고 싶을 만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차츰 작품다운 모습이 갖춰질 때면 바늘에 찔려 천에 묻은 작은 피 한 방울조차 성스럽게 느껴질 만큼 깊은 몰입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문득, 부모란 자녀라는 집을 짓는 과정의 '현장 감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높고 단단한 건물을 올릴 수 있도록 튼튼한 기초를 다져주는 조력자 말입니다. 모든 공정이 그렇듯 기초 공사 기간은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지루하며,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힘듭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토대를 잘 닦도록 도울 뿐, 그 위에 뼈대를 세우고 온기로 내부를 채우는 마무리 작업은 오롯이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집을 완성해 버린다면, 아이는 그 집을 자신의 보금자리라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남이 만든 퀼트 작품을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비록 제가 낳은 자식일지라도 저와 아이 모두는 신의 원작(Original)입니다. 먼저 태어난 엄마인 저는 그저 어린 생명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목자이자 청지기일 뿐, 그 원작을 제 마음대로 바꿀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아이가 단단한 반석 위에 스스로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맑은 영혼의 공기를 채우도록 돕는 존재라는 사실에 만족하려 합니다.

우리가 조력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킬 때, 위대한 예술가이신 주님께서 마지막 손길로 우리 아이를 가장 아름다운 '걸작(Masterpiece)'으로 완성해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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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로 지은 '내 집' 연작 중 한 편입니다. 둥근 틀 안에 평화롭게 자리 잡은 집과 마당의 자전거 한 대가 우리 마음속에 품은 소박하고도 아늑한 꿈을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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