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들아, 넌 이렇게 예뻤단다

'아이돌(Idol)'의 사전적 의미는 우상, 즉 '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그 무엇'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 부모 세대는 혹시 자신의 아이를 저마다의 우상으로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김영희 작가님의 닥종이 인형이 유독 정겹게 느껴지는 건, 그 속에 우리네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서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아이를 업고 있는 작품을 마주하면 마음 한구석이 애틋해지곤 합니다. 어린 시절 막내 동생을 업어주던 기억과, 내 아들을 등에 업고 보냈던 소중한 시간들이 새삼 그리워지기 때문입니다.

직장 맘이었던 저는 전업주부인 어머니들만큼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어깨가 약해 마음껏 업어주지도 못했지요. 하지만 두 가지 예외적인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몸이 아플 때, 그리고 서너 살 무렵 아들과 함께 아파트 뒷동산에 오를 때였습니다.

주말이면 아들의 다리를 튼튼하게 해주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뒷산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즐겁게 앞장서던 아이도 얼마 못 가 다리가 아프다며 칭얼대곤 했습니다. 결국 산 중턱부터는 제 등이 아이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숨은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등에 닿는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과 목을 감싸 안은 작은 팔, 그리고 귀가에 속삭이던 재잘거림이 그 모든 수고로움을 눈 녹듯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 짧은 거리에서 느꼈던 행복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지요.

어린 자식은 언제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다 자란 뒤에는 더 이상 우리가 업어줄 수 없는 날이 옵니다. 이제는 튼튼한 두 다리로 이 험한 세상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이 우리 엄마들의 마지막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 옛날이여~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나, 그날~"

가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제는 소도둑처럼 덩치가 커진 털복숭이 아들을 봅니다. 그러다 문득, 내 등에 안기던 그 시절 아들의 말랑거리고 보드라운 살결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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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어린 시절 놀던 모습들을 추억하며 만든 퀼트 벽걸이입니다. 지금은 냉장고 한편에 붙여두고 영수증이나 메모지를 꽂아두는 소중한 일상의 소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등에 업혀 재잘거리던 아들의 보드라운 촉감과 그 아이가 자라 세상을 향해 낚싯대를 던지던 순간들, 그 모든 기억들이 바늘 땀을 따라 따스한 무늬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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