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이가 진짜 내 자식이 될 때

퀼트 작업을 하며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단연 엄마들과 나누는 맛깔스러운 수다입니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던진 우스갯소리에 샵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똑똑해서 나라의 일꾼이 된 자식은 나라 자식, 돈 잘 벌어 처가에 다 갖다 주는 아들은 장모님 아들, 그럼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백수 아들은?” “그야 당연히 ‘내 아들’이지요!”

깔깔대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내 공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특히 장성한 아들을 둔 엄마들의 눈가에는 웃음 뒤에 가려진 묘한 회한이 스쳤습니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그 마음을 누가 모를까요.

자식이란 무엇일까요? 한때 내 몸의 일부였으나 결코 내 것이 아니고, 내 몸이 쇠할수록 더 강해져서 결국 나를 떠나야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닐까요.

3대가 함께 살던 우리 집은 시부모님 덕분에 민간요법이 일상이었습니다. 아들이 기침이라도 하면 배와 꿀을 중탕해 먹이고, 파 뿌리를 정성껏 씻어 두었다가 감기약 대신 달여 내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인지, 아이가 네 살 무렵 제가 아파 누워 있으면 고 작은 손으로 수건에 물을 적셔오곤 했습니다. 물을 제대로 짜지 않아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건을 질질 끌고 와 제 이마에 툭 얹어주며 아이는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머이(머리)’ 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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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의 추억은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 내 퀼트 연작, 마마스 퀼트 중에서" >


그 고사리 같은 손길을 느끼며 생각했습니다. 자식이란 그저 부모의 달아오른 머리를 잠시 식혀주는 존재면 족하다고 말입니다. 그 이상을 바라는 욕심은 금물입니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세상에서 치여 돌아왔을 때, 그저 그 열기를 식혀주는 물수건 같은 존재면 충분합니다.

아무리 직장 생활이 고되고 사는 게 퍽퍽해도, 집에 돌아와 어린 아들의 말랑한 볼을 만지는 순간 경직되었던 근육과 정신이 부드럽게 풀리곤 했습니다. 다시 힘이 솟고 살아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지요. 저는 제 아들에게도 그런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마주할 세상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가혹한지 잘 알기에, 집에 오면 엄마의 서툰 목소리를 듣고 정성이라는 MSG가 듬뿍 들어간 떡볶이를 먹으며 다시 충전되길 바랐습니다. 팔딱거리는 생명력으로 다시 세상을 휘저을 수 있는 힘, 그것을 얻는 곳이 집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딱 그 정도가 좋습니다. 과유불급이라 했습니다. 무균실에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듯, 우리 엄마들은 그저 아이의 '한 편'이 되어주고 에너지가 되는 소울푸드를 만들어 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순간, 아이에게 필요한 인생의 면역력과 질긴 근육은 사라지고 말 테니까요. 그저 열이 오를 때 얹어주는 시원한 물수건 정도의 거리,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거리입니다.

물론 똑똑한 자식도 좋고 돈 많이 버는 자식도 환영입니다만, 백수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내 자식인걸요. 하지만 아들아, 백수 생활이 너무 길어지면 엄마도 '머이'가 좀 뜨거워질 것 같구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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