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일까? 호랑이일까?

을사년을 보내며...


%ED%98%B8%EB%9E%91%EC%9D%B4%EB%83%90_%EA%B3%A0%EC%96%91%EC%9D%B4%EC%9D%B4%EB%83%90_%EB%8F%99%EC%A0%84%EC%A7%80%EA%B0%91.jpg?type=w966

< 호랑이 해에 만든 퀼트 동전지갑. 호랑이로 안보인다고요? >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 '푸른뱀의 해'라고 한다(청색을 상징하는 '乙(을)'과 뱀을 의미하는 '巳(사)'). 매년, 새해가 되면 그 해의 띠별 소품을 만들곤 했는데, 올해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뱀띠 해 여서 동전지갑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배로 기어다니는 길쭉한 동물은 무엇이든 징그럽고 무서워서 그림으로도 똑바로 보기조차 어렵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 겨울 가방을 슬슬 정리 하던 중에, 오랜만에 봄 가방을 이리저리 찾다가(내가 만든 작품중에서 단연 제일 많은 작품이 가방이라, 내가 영부인이 되었다면 한국의 이멜다(필리핀 독재자의 부인, 사치의 대명사가 된 여자)가 될 뻔했다. ㅋㅋ) 나는 가방에 꼭 뭔가 매다는 것을 좋아하는데, 봄 가방에 매달린 호랑이 동전지갑을 보았다. 아들이 호랑이 띠 이기도 하고 슬쩍, 아들이 호랑이 같은 용감하고 강한 의지, 그리고 리더십을 가진 멋진 남자로 자라길 바라는 엄마의 소망도 있고 해서(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임을 고백합니다), 참 애장하던 동전지갑 이었다. 그런데 동전은 거의 쓸일이 없어서 유선이어폰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난 충전이 필요없는 유선이어폰을 더 좋아한다)

나는 남들이 다 꾼다는 태몽을 한번도 꾸지 않고,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이 죽고 나서 6년간 아이를 가질 수 없어 마음 고생도 심했는데, 어느날 동생 내외가 꿈을 사라고 해서 (장난처럼) 단돈 만원을 주고 산 후에 아들을 낳았다. 신라시대, 김유신의 두 여동생 중에 언니가 자매인 여동생에게 자신이 꾼 꿈을 팔고 이를 산 동생이 결국 김춘추의 부인(왕후)이 된 이야기처럼,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나도 그 떠올리기도 싫은 시기를 어떻게 지내 왔는지 모를 지경속에서 나를 생각해 주는 동생네의 그 마음이 참 고마웠기에 꿈을 샀다.

이렇게 현대 의학도 거의 포기하다시피한 내 몸에서 기적처럼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 기쁨이나 경이로움은 오죽이나 했겠는가? 또래아이들보다 말문이 늦게 트였어도, 5살 될때까지 젖병에 우유를 먹어도, 똥만 잘 싸도 박수를 쳐 주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털 많은 곰 같은 아들녀석이 어릴때는 곱상하고 부끄럼도 많고, 겁도 많아서 유치원에서 에버랜드로 소풍을 가면 우리애만 놀이기구 하나를 못타서 선생님이 따로 지켜주어야 했다고 하질 않나, 초등 저학년때는 천안에서 꽤나 기침이나 한다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사는 우리 애랑 놀아주는 애가 거의 없어, 친구들이 축구할 때 물떠다주고 공 줏어 주는 것 밖에 못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온 가족이 가족 회의를 열어야 할 근심덩이가 되었다. 이제 학교 왕따가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일거였다.

호랑이 띠, 호랑이 같은 사내로 자라주긴 애초 글렀다(고 포기 해야 하나?). 고양이면 어떠냐, 다소 내성적인 성격에 조용하고 신중한 애인것도 감사하지. 내가 집사(교회 집사이기도 하고...ㅋㅋ)라고 생각하면 되지. 선물처럼 온 아이인데, 일단 하나님이 주셨으니, 나는 밥 잘 먹이고, 교육 잘 시키고, 착하고 법 잘지키는 민주시민으로 키우면 제 밥벌이는 하겠지. 마음을 비우니 모든게 감사했다.

50세를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 즉,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아는 나이라고 했다. 내가 50대를 지내 오면서 이렇게 철학적이고 멋지게 살진 못했어도 최소한 지나친 기대와 욕망을 자제하고 모든것을 내 주관이 아닌 객관적 관점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던것 같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면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단기간의 성공을 쫓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했다. 본래 고양이와 호랑이는 생김새는 비슷할지 모르나, 전혀 다른 동물이 아니던가?

이제 내 나이, 60세다. 흔히 이순(耳順), 즉 귀가 순해져서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 할 수 있는 나이, 라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젊은 시절에는 내가 호랑이인줄 알았다. 강한 의지와 결단력, 목표를 명확히 하고 나아가는 도전정신으로 똘똘뭉쳐서 노력하면 못할 게 없는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고양이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여전히 독립적이긴 하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고, 조용히 관찰하고 작은 행복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며 약간은 게을러진것까지 고양이의 특성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호랑이의 참을성 없고 두려울 정도의 강인함이 이 나이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키우면서 우여곡절, 드라마를 찍을 사연들도 많았지만 , 아들은 현재 상태로 보자면 고양이보다는 조금 크고, 호랑이가 되기에는 에너지와 용맹함이 못미치는 존재이다. 일년에 키가 10센티씩 자라던 사춘기 때처럼, 사회에 첫 발을 내 딛고 본격적인 정신적 성장기에 있는 아들이 어떤 존재가 되든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태몽하나도 못 꾸어서, 인정 많은 외삼촌 내외가 대신 꿈도 꾸어 준, 부족한 엄마에게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마냥 고맙고 대견하니까.


그런데,

아들은 날이 갈수록 호랑이 과는 아니다.

곰 과에 가깝다. ㅋㅋ

12지신에 곰띠를 넣어야 할 판이다.

(뱀띠를 뺄까? ㅋㅋ)



*** 약 1년 전쯤 쓴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고양이를 좋아해 보려구요^^